[서울= 아트코리아방송]= 중국의 인권운동가이자 첫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류사오보가 간암으로 62세의 생을 마감했다.

나경택 아트코리아방송 논설고문/칭찬합시다 운동본부 총재
2008년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에 맞춰 공산당 일당체제 종식을 촉구한 08헌장을 주도한 죄(국가전복선동)로 11년 형을 복역 중이던 그가 올 5월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음에도 중국 정부는 아내와 함께 해외로 나가 치료받고 싶다는 그의 소망을 끝내 저버렸다.

 

인도적 편자의 출국을 요청한 국제사회의 호소도 외면했다. 류사오보는 다른 반체제 인사처럼 해외 망명의 길을 택하지 않고 14억 인민과 함께 가혹한 인권 탄압을 감내했던 중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었다.

 

조국에 머물면서 민주화운동을 해야 하루라도 빨리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1989년 민주화의 외침이 터져 나온 텐안먼 사태 당시 미국 컬럼비아대 방문학자였던 그가 서둘러 귀국해 민주화를 위한 단식투쟁에 나서고,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중국 정부와 협상을 벌여 더 큰 인명 피해를 막은 것은 유명하다.

 

그가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을 들은 것도 옥중이었다. 노르웨이의 시상식에는 ‘빈 의자’가 자리를 지켰다. 류사오보의 죽음을 계기로 중국의 인권탄압을 비판하는 지구촌 여론이 들끓고 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그의 이름도 죽음도 잘 모른다.

류샤오보

중국의 언론이 침묵하고 인터넷도 모두 검열 받고 있기 때문이다. ‘중화인민공화국 국민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 행진, 시위의 자유가 있다.’

 

‘통신의 자유와 통신 비밀은 법률의 보호를 받는다.’고 명시한 중국 헌법이 중국 인민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류사오보가 죽음으로 입증한 셈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인권 침해에 대한 지적이 나올 때마다 내정 간섭이라며 어깃장을 놓는다.

 

중국의 열악한 인권 현실과 국제 사회에서의 행보를 보면 이 나라는 진정한 애국이라고 하기 어렵다. 류사오보는 부당한 국가권력에 저항한 인권과 자유의 투사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는 그를 반정부 인사로 낙인찍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도록 방치하고 외국에서 치료받게 해 달라는 마지막 요청마저 거부했다.

 

전 세계에서 알고 있는 예도의 물결은 위대한 인간을 잃은 데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지만 중국 당국의 비인도적인 처사와 중국의 인권침해에 침묵해온 국제사회에 대한 분노이기도 하다.

 

한 인간의 생명과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이 국가권력과 국익 앞에 짓밟히는 비정한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국제사회가 류사오보 문제를 제기하면 내정 간섭이라고 무시하던 중국 정부는 규탄 받아 마땅하다.

류샤오보

중국 정부는 그의 죽음을 감추기에 급급하는 등 그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류사오보 사후에 나온 중국 정부의 첫 공식 반응은 외교부 성명을 통해 “국내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이 같은 인식은 과거 신장위구르 및 티베트 민주화운동을 중국의 핵심이익 이라며 서방국가의 인권침해 문제 제기에 내정간섭을 하지 말라고 한 것과 궤가 같다.

 

하지만 정치범이라는 이유로 죽을 때까지 방치하는 것은 비인도적인 처사이자 어떠한 이유로도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중국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데는 국제사회의 책임도 크다. 국제사회는 그동안 중국의 인권침해를 한목소리로 비판하지 못했다.

 

커져가는 중국의 영향력과 그에 따른 국익 때문이다. 류사오보의 죽음을 앞두고 독일과 미국 등 일부 서방국가는 그가 외국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을 중국정부에 요청했지만 인권침해라는 말은 꺼내지도 못했다.

 

국제사회는 그의 죽음을 인권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국제사회라는 중국이 그의 부인 류샤를 어떻게 대할지도 주목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류사가 중국을 떠나든 남든 존중해줘야 한다. 그것이 류사오보 죽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류사오보는 갔지만 그가 보여준 고결한 용기는 후세에 귀감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2017년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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