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트코리아방송] 흔히 랜드 마크라는 개념을 공유한다. 뉴욕 자유의 여신상, 파리 에펠탑, 런던의 시계탑, 리오 자네르의 십자가, 혹은 도쿄의 후지 산, 스위스의 알프스, 또는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건축, 상징을 심벌로 연결한다. 랜드 마크는 상징이미지를 담고 서서히 문화융합을 거듭하며 성장한다. 명품브랜드 도시다. 할리우드와 로스엔젤레스, 도박과 홍등가의 캘리포니아, 싱가포르, 홍콩, 대만, 방콕, 오사카 등 관광과 쇼핑의 도시 명품브랜드 개념을 정립한다. 도시 명품브랜드는 관광과 쇼핑 인프라 즉, 문화상품네트워크를 작동시키고 있다. 그 중심에 ‘축제 ’라는 역동성을 정립하고 있다. 물론 다층적인 개념 위에 쌓아놓은 생명력이다. 과연 생명력의 텍스트는 무엇일까.

광장담론의 성숙함은 명품도시의 얼게다. 광장은 매우 조심스러우며 겸손하고 은유적이어야 한다. 크고 번잡스러우며 지나치게 발광하는 빛으로 치장되면 미성숙한 것이다. 이를테면 전체주의 광장미학, 전, 근, 현대국가가 지향하는 메머드급 국가행사를 치루는 마당을 도시 광장담론에 담으면 안 된다. 더욱 위험한 겉치레는 광장의 동상이 국가이념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려는 도시 우상개념의 만연이다. 오히려 고즈넉하며 유희적이리만큼 자연적인 유적물이 다층적으로 퇴적된 광장을 존재시키는 것이 성숙된 광장이다. 그 속에서 주섬주섬 고개를 디밀고 속삭이는 소리가 스토리, 즉 이야기가 있는 광장이요 「신화」를 공유하는 콘텐츠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지 얼마나 지체되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본고의 방향성은 문화담론의 정제를 찾고자하기에 그 기준점을 오늘의 문화 광장담론으로부터 정의하기로 했다. 이른바, 문화정책개발시대의 선언이자 개념 정의다. 일제 강점기, 5.16혁명기간을 개발정책시대, 신군부, 6공화국 시기를 사회개발정책시대, 2002 한일월드컵을 분수령으로 문화정책개발시대의 원년으로 삼아 정립한다. 그 정립의 상징이 「광장담론」이다.

명동, 이태원, 신촌, 강남 테헤란 로의 명제, 경제개발정책의 시대다. 모방과 생존의 텃밭을 일구며 엮은 광장이자 명품쇼핑거리다. 대학로, 홍대, 로데오거리, 일명 코엑스 몰처럼 군, 소 신도시에 창조된 로데오거리다. 사회개발정책시대의 유행선도 광장거리다. 대학로, 국악로, 전통문화거리 인사동, 세종로, 청계로, 서울광장, 광화문광장, 숭례문광장, 정동로, 문화정책개발시대의 광장 인큐베이터다.


흔히들 여의도광장, 촛불광장 따위의 정치수사 용어는 문화담론이 아니다. 시대의식의 성장 인프라다. 문화는 자유이며 극치이고, 브랜드이며 쇼핑일뿐더러 「축제」다. 문화담론에 근접한 이미지는 「신화」다.

신화의 제1법칙은 광장담론과의 연결이다. 역사의 스토리와 광장미학이 어우러져 쇼핑이 이루어져야 한다. 쇼핑은 곧 관광이어야 한다. 한 개인의 음미와 만족이 작동되는 시스템이다. 의도적이거나 기획된 도그마는 전체주의 미성숙의 발로다. 그 적폐의 기호가 동상이요 이벤트, 전시용, 정치용어의 난무다. 좀 더 성숙한 접근을 거듭하면 북촌, 서촌벨트의 유구 성을 음미하면 진가를 읽는 준비를 할 수 있다.  종로, 을지로, 퇴계로, 충무로, 명동의 역사성을 발견하면 한층 더 흥미로워진다. 청계천과 청계천광장 담론의 한계성과 독창성을 읽게 되면 우리 모습의 미약함을 쉽게 알 수 있다.

여하튼 대학로, 국악로, 인사로, 세종로, 청계로, 홍대로 강남로, 여의도로를 문화담론의 얼개로 확인한다. 마로니에광장, 정동극장광장, 세종로 뒷마당, 그런 소박하고 조용하며 아득하기까지 한 마당에서 피어나는 이벤트가 문화담론의 정수다. 천만 관광시대의 준비요 승화점이다. 물론 방사선 구조분자식처럼 난이도 있는 관점을 하나하나 정립하며 본고의 신화 논조를 정립하여야 한다. 문화방정식의 노고를 수반하여야 함을 알고 있다.

40여 년 전 문화담론의 정립을 위하여 걸어온 필자의 입장은 사실 곤혹스러웠다. 대한민국신화를 담고, 쓰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일필휘지로 원고를 마감할 것으로 판단했다. 벌써 몇 주를 끙끙거리며 텍스트 글자 욱만 조고만 대학노트에 채우고 말았다. 그야말로 산고의 진통은 아니지만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 홍역 중에 고개를 들고 백악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나 스스로가 몇 번이나 저곳, 맷돌바위를 응시하였는가. 문화정책개발시대의 상징처럼 담으려한 신화의 상징격인 그곳을 담으려고 그 얼마나 긴 여정을 쏟아냈는가. 스스로가 그러하고 목표치가 그러한데 어찌하여 장담하고 글귀를 풀어 담을 수 있을까. 물론 깊은 잠결 전에 떠올린 본고 착상이었다. 그렇다면 신화, 관광, 광장 담론의 방향으로 1인칭 본고를 정립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복합사고의 몸부림 같은 토로였다. 

대한민국 신화의 노정은 일 백 년 전의 일제강점기로부터 시작된다. 부침과 질곡은 어둠을 향하고 있으나 결코 찬란한 빛을 상실하지 않는다. 빛은 결코 어둠의 그림자보다 어두울 수 없다는 섭리다. 신화는 질곡으로 어둠이 보이는 곳에서 은자 적으로 빛나게 되어 있다. 명품도시의 그 모든 얼개 속에 깃든 참화의 열매임을 담고 신화 DNA를 찾아야 한다. 세종로광장의 아이콘은 당연 세종대왕과 이순신동상이다. 찬란함을 세우려는 기념비는 오히려 초라함으로 치닫는다.

세종로의 랜드 마크는 당연히 백악이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주산 백악이요 삼각산이다. 백악의 움 터에 자리 잡은 광화문, 즉 조선 오백년의 정궁 경복궁이다. 백악의 이야기는 북악으로 잠칭되어 오늘에 이른 슬픈 암흑이다. 암흑은 결코 감춰야할 허물이 아니라 근, 현대를 살아온 지층의 표석이기에 그 자체가 대한민국의 나이테다. 왜, 백악을 북악으로 잠칭하였으며 오늘에 이르렀는가. 라는 질문과 대답을 통하여 대한민국 금수강산의 설화가 장황하게 상상의 나래를 펴고 시작된다.

백악의 뫼 머리혈에 맷돌바위가 성성하다. 동남쪽 안영은 줄곧 그린 겸재의 그림을 살펴보면 삼청동 솔밭신화가 성큼 다가선다. 백악과 맷돌바위, 그리고 솔밭 쑥빛 청감어린 색감을 읽노라면 웅대한 대한민국 금수강산의 오마주가 잡힌다. 문화정책개발시대, 제1과제인 광장담론의 성격을 잡는 시각이다. 겸재의 인왕산수도와 북악산수도를 일컬으며 고려, 조선의 설화이야기는 시작된다. 참으로 멋진 글머리요 말머리이고 광장 밑돌의 호흡이다. 인왕산수도 정경은 그 자체다. 한국의 자생풍수사상의 정수를 일컫는 문명의 지도다.

인왕산 정경은 노자의 도덕경을 일컫듯 도교의 산천을 읽게 되는 품격 있는 산수임과 동시에 조선 정궁의 앞 마당격의 조경 풍수가 아니고 무엇이랴. 인왕산 남서쪽 언저리의 아미타 자연불상이 백악의 맷돌바위와 앙상블이 되어 자리 잡고 있다. 말바위에서 힘차게 화강암 암반층은 병풍바위를 이루며 조선 정궁을 에워싸고 힘을 보태고 있다. 말바위의 준령은 삼청동, 인사동을 도도히 흐르며 수도 서울 중앙 지표 석에 다다른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 중심석이다. 지금의 인사동 하나로 빌딩 안에 위치한 지석이 응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유의 기초 위에, 뒤를 돌아서면서 남산의 N타워 모습을 음미해본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우리 소나무 우리 향기로움의 신화를 찾아 여행을 시작해보면 어떨까.

북악의 맷돌바위, 인왕의 아미타불, 낙산의 범바위, 남산의 솔밭 향취를 머금으며 광화문 월대마당, 즉 광장의 화두를 시작해본다. 갑자기 금수강산의 파노라마가 지층의 역사를 휘어 치며 유교, 불교, 도교의 산천대천의 아이콘이 융합되어 오늘, 도도하게 스토리가 되어 광화문 월대에 자리 잡게 된다. 겸재의 사색을 농해 시켰던 금수강산도와 한강화첩의 낱낱, 실경산수화의 르네상스 시작점으로 놓고,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토정 이지함의 토정비결 속에 담은 신화이자 스토리이다.

남산너머의 한강은 백악, 인왕, 낙산, 남산에서 발원한 청계천 지류에서 사람, 자연, 문화의 스토리가 지금도 생성됨은 자명해 보인다.  뚝섬 어귀를 흐르는 이 실개천의 생명은 한강을 연모하는 것이요, 한강의 존재와 서울의 섭리는 이미 문화, 문명의 신화를 거듭하고 있을 터이다. 양수리에서 합일의 기운을 담은 것은 금강, 오대산, 태백산의 모든 정수를 아우라지로 담은 한판의 춤사위다. 문명의 춤사위이자 신화의 춤사위다. 이러한 판타지아의 은유를 위하여 한강의 한(漢)을 직역하여 은하수 한(漢)자로 하였음을 깨달고 한강의 신화는 은하수의 전설로 오마주한다. 물론 광화문 월대, 세종로광장 담론의 화두다.

맷돌바위, 아미타불, 범바위, 솔밭, 은하수라는 명제를 하나의 스토리 신화로 도입하고자 문학성을 감미로운 은유의 세계로 안내하기로 한다. 고려의 하늘, 조선의 아침, 용의 눈물, 봉황의 꿈, 은하수의 전설- 이 테마는 벌써 40여년의 문화운동사를 정립하며, 「신화를 찾는 사람들」의 문화담론 활동을 전개했다. 단지 담론의 전문성을 위하여 시집, 동화창작을 나누어 진행하고 있다.

세종로광장, 청계천광장, 서울광장, 숭례문광장, 그리고 광화문 광장문화의 담론에 「신화」 라는 주제는 살아 있을까! 경복궁, 광화문, 숭례문복원의 미학 중심에 살아 숨 쉬는 스토리가 있을까! 요즘 유용되고 있는 랜드 마크의 철학이다. 광화문광장 월대의 높이와 넓이, 사유의 증폭은 우리의 성찰지대다. 광화문 월대에서 응시하고 사유하는 고려의 하늘, 조선의 아침, 용의 눈물, 봉황의 꿈, 은하수의 전설 스토리는 「대한민국 신화를 쓰다.」의 시작점이다. 세종로의 랜드 마크는 당연히 백악이다.

지금 월대의 높이 위상을 음미하면 문화, 문화를 보는 우리의 눈높이를 공유한다. 조금 서글픈 것이어도 어찌하랴. 도도함의 역사는 그 허물을 벗으며 정수를 심층에 담는 것을. 대한민국은 지그시 신화를 쓴다.  광화문광장 월대에서 어떤 시성이 읊조리거늘.

오, 찬란한 고려의 하늘이
나옹선사와 지공선사,
무학대사의 너울 삼아
호방한 옥황상제의 도화선을
견주어 너투었다.

오, 찬란한 거북등과 용의 비늘과
범의 눈 초롱과 봉황의 깃털이
이곳을 응비하여 도모하니
일만 이천 봉우리의
금강과 오대와
태백의 이름으로 흐르는 강물 위에
우리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연개소문의 꿈이
왕건의 신념 위에
이성계의 조선 문턱에
되살아난 목멱대왕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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