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화두


통찰의 지대를 지나야 하고, 섬광처럼 빛나는 창조의 영감을 얻고서야 ‘문화’라는 맛을 이해한다. 40여년 문화운동 현장에서 화두처럼 삼아온 문화생태계다. 통찰의 영역은 역사얼개요 민족, 국가 영역의 날실과 인류, 문명이라는 올실의 짜임을 읽는 학습이었다. 또한 인류와 민족 차원에서, 부침과 영광의 에너지를 정화하는 오묘한 사색의 창을 부단히도 마름질하여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 라는 정수는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면서도 감히 통찰의 지대를 관통하였노라고 외치고 싶었음을 밝힌다. 물론 청, 장년기를 지나오며 불현 듯 자기연민의 위로차원에서 설정된 좌표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있다.


‘문화’ 란 무엇이기에, 이처럼 지나한 시공간대를 관통하여도 오리무중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일까. 40여년의 외길인생이면 적잖은 내공을 섭렵하였을 터인데도 조바심과 설렘, 섬뜩하게 맞이하는 미지의 영역 앞에 문화논리는 재정립되며 설계되는가! 그뿐이랴. 섬광처럼 빛나는 창조지대의 패러다임은 숨 막힐 지경의 생태계를 작동하고 있으니 감히 ‘문화’, ‘문화론의 일갈은 한 인간 사유영역으로 통찰할 수 없음을 확인한다.
 
불쑥 ‘과학’이라는 명제가 사조를 거듭하며 ‘사회과학’ 또는 인문과학‘이라는 장르가 잉태되었다. 서구문명의 생태계 중심에는 과학DNA가 작동한다. 그 부산물의 결정체가 사회과학, 인문과학 또는 근, 현대 21C 문명사상으로 환원된다. 살펴보면 유일신사상, 즉 기독교문명을 기반으로 한 블란서혁명, 산업혁명, 르네상스, 이데올로기의 굵직한 시대혁명사의 개념을 지탱해온 토대가 과학DNA다. 글로벌 정보화시대의 DNA 또한 과학이라는 명제를 벗어날 수 없다. 견고한 생명력을 살펴봐야 한다. 한편으로는 분단, 전쟁, 식민지, 역경을 관통하며 일구어 온 우리 문명의 토대를 명제하는 내공이 요구된다. 정화, 성숙, 성찰, 치유의 명제가 숱하게 습득된다. 우리 고유의 철학이자 존재의 이유다.

정리해본다면, 인류문명의 과학DNA에 맞서 우리 고유의 존재의식을 창조생명력으로 탄생시키는 일이 ‘문화’다. 시대의식의 변곡점으로 환원됨이 마땅하다. 통찰의 지대와 섬광처럼 빛나는 창조DNA의 성격이다. 여하튼, 이러한 관점을 정립하며 본 필자가 40여년의 문화운동 현장에서 습득한 명제를 집필하기로 하였다. 아트코리아방송의 뿌리, 열매 또는 무수히 흐르고 있는 바람결의 그 모든 것과의 만남을 통찰지대의 숨결로 삼았다. 지저귀는 산새의 음결마저도 섬광의 창조물을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문화예술 독자에게 잦아드는 잉여에너지로 삼아 화두를 삼기로 하였다.

관광, 문화전쟁의 시대가 문을 활짝 열었다. 철강, 섬유, 유통 전쟁의 시발점은 식민지 냉전이데올로기라는 악성바이러스를 암약시켰다. 정화의 법칙은 평화, 인간성, 문명정신으로 대치되었고 끝내는 퇴치되거나 박멸된다. 그 과정을 팽팽하고도 기묘하게 유지되며 온갖 기술로 기득세력들은 버팅기고 있다. 그러나 관광, 문화전쟁의 깃발은 질병 하나하나를 박멸할 것이며 온당한 처방전과 면역체계를 작동할 것임이 자명하다. 그 응원군의 인프라가 디지털혁명의 생명체다. 통제, 왜곡, 전체주의를 용납할 수도 작동될 수도 없는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관광 욕구와 개인의 작동은 뚝 터지듯 인류광장에 생태계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관광은 만남이며, 따뜻함이고 소통이며 공유다. 인류가 갖는 최고, 최선의 미학이 아니고 무엇이랴. 한 순간에 인류가 쌓아온 만남, 정보, 무게의 질량을 초월하는 이미지가 계속적으로 실험되고 창조된다. 온 인류가 직면한 생활이요, 욕망이다. 정보화, 관광 이데올로기는 인간 욕망의 궁극처럼 경쟁력을 내재한다. 세계 1, 2차 대전, 냉전시대를 지나 정화지대를 관통하고 있다. 21C 오늘 우리가 맛보고 지탱하며 받아들이고 있는 보편적 세계관이다.

21C 평화의 문명 전도사는 관광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살펴보아야 할 이유다. 정보, 관광, 그리고 문화라는 가치는 마치 섬광처럼 잦아든 별똥별의 꼬리표처럼 성성해 보인다. 옛 우리 선조들이 자연의 신비를 직관하고 가늠하였던 영감체계처럼 번뜩였다. 21C 인류마당에 잦아든 이데올로기는 관광, 방송, 문화라는 얼개다. 앞서, 통찰의 지대, 창조, 인류문명, 우리의 테제를 아우르며 불숙 관광, 방송, 문화이데올로기라는 결론을 유도했다. 본 칼럼의 TEXT는, 이 이야기로 꾸며질 것이고 음미의 시간을 함께 하는 지면이기를 소망해본다.

때로는 자기 최면에 빠진 듯 할 것이고 도취되어 버린 나머지 몽롱한 비전을 설파하는 돈키호테적인 사유도 있다. 여하튼 잡스의 사과와 해적깃발 실험은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았음이 분명해 보인다. 인문학 열풍, 인문학 경영의 소요가 만만치 않지만 때로는 사람 냄새나고 조금은 허튼 소리 같으나 문화방언의 몸부림도 곁들여야 관객이 감동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누구보다도 아트코리아방송의 철학을 직시하고 응원해온 필자는 한 귀퉁이 칼럼의 시작이 문화마당의 울림이 될 것을 믿고 있다. 나름 이 논조의 방향을 잡기 위하여 삐에로의 눈물, 엄마세포의 환원, 왜곡장 등 준비 글이 요구되었다. 2016년, 2017년 겨울과 봄을 관통하는 필자의 세계다. 곁들여서 발표를 함께 할 것이고, 본 지면의 얼개를 잡으며 인사를 대신한다.

∘ 신화를 요구하는 대한민국

∘ MALL의 철학을 넘어 고호를 탄생시킨다.

∘ 아흥다흥드리 24절기, 티파니의 미소를 연출하다.

∘ 스타벅스의 멜로 음을 담다.

∘ 삐에로, 왜곡장, 엄마세포 그 각각의 유리거울

∘ 만화가 답이다. ART가 부자다. 문화가 주인공이다.


 박 동(문총련위원장)

* 위 그림은 신화를 찾는 사람들 인문학강좌 카툰의 일부입니다.(그린이 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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