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보면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성품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성품대로 작업을 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작업으로 풀어낸다. 누구나 만나는 세계의 사물이지만 신현순이 보여주는 사물은 이미 다른 의미의 표상이다. 신현순이 만들어낸 이미지들은 대부분 벽에 비췬 나무나 잡초 등의 그림자 혹은 여린 풀잎에 주목한다.

왜 이렇게 하찮고, 소소한 주제에 주목하게 되었을까? 그 이미지들은 마치 수행자들의 느린 호흡과도 같다. 바라보는 대상으로 하여금 여여롭게 만든다. 그 텅 빈 여여(如如)함이 현실을 초월한 구도자의 발걸음과 닮아있다. 해서 그녀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불안했던 마음, 들뜨던 마음이 어느 새 차분해져 옴을 느낀다.

그녀가 바라보는 이미지는 자신의 일상에서 손으로, 마음으로, 눈으로 닦여진 존재이다. 일상의 무수한 관계망들로부터 빠져나와 무심히 시선을 던지면 거기에 있어서, 혹은 없어서, 있고 없음에 연연해하지 않는 그것만으로 위로가 되어주었던 물상일 것이다. 에 보면 ‘心不在焉 視而不見 심부재언 시이불견‘이란 말이 나온다.

즉 '마음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란 뜻이다. 작가는 자신이 찍은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게된다. 그녀가 만들어낸 이미지는 보는 이로 하여금 ’나‘의 마음을 바라보게 한다. 작가의 견고한 시선이 건네는 힘은 이처럼 소소한 주제를 통해 의미를 무한히 확장하는 데 있다.

신현순의 사진에는 동양의 정서와 불교적 사고가 짙게 베어있다.「NOTHING」, ‘무無’란 단어를 한 겹 벗겨보면 ‘유有’의 개념을 품고 있다. “있음과 없음이 서로 생기며 있음은 없음에서 나고, 없음은 또 있음에서 나나니...‘’유무상생(有無相生)의 개념은 노자老子의 사상이기도하다.

있다는 것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에만 드러나는 것이다. 이 말은 모든 세상 사물과 자연의 이치가 상대적인 비교에서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으로 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이라는 말과도 통한다.

모든 우주만물이 고정된 실체가 있다면 그 어떤 변화도 생길 수가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은 실체가 없기 때문에 변화한다. 존재하는 것들은 다 변한다. 물상이 있으면 그 물상의 그림자가 생기고, 그림자는 빛의 생과 사에 의해 있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그녀가 자연 안에 천착해있는 나무, 풀, 잡초, 여린 나뭇잎들, 바람, 그들이 그려내고 있는 그림자에 마음을 담아내는 이유는 삼라만상 모든 존재하는 것은 인연생기, 인연화합, 즉 연기법으로 존재한다는 불교적 사고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신현순의 작업과정 또한 지난한 시간을 담보로 하고 있다. 이렇게 미친 듯이 빠름을 요구하는 시대, 가장 쉽게 만들어지는 디지털 사진에서 벗어나 사진 발명 초창기의 대중적인 인화 방식이었던 이름조차 생소한 인화 기법인 ‘반 다익 브라운 프린트Van Dyck brown print’의 고풍스럽고 깊이 있는 회화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아마도. 붓으로 유제를 바른 정도에 따라 사진의 톤이 다르게 나올 것이다. 그 시간동안의 오랜 기다림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의 땀과 정성이 가득한 수작업 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감광유제를 바른 우윳빛 한지는 연한 섬유질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그 위에 인화된 사물의 이미지들은 마치 안개 속에 있듯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사진 속 풍경의 색은 색감이나 계조가 심연처럼 조용하고 깊은 물처럼 맑다. 거기에 머물면 텅 비게 되고, 텅 비게 되면 고요해지고, 고요해지면 올바로 움직이게 된다. 깊은 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의 흐름처럼 느리고 묵직하다. 빠름의 시대에 한결같은 호흡으로 여여(如如)한 시간의 향기를 우리에게 선사해주고 있는 그녀의 사진은 바라볼수록 차분해져온다.

신현순의 사진에는 욕망보다 절제가, 펼쳐짐보다 숨김이, 소란함보다 침묵이, 복잡함보다 단순함이, 움직임보다 멈춤이, 채움보다 비움... 이런 동양적 사유가 공간 안에 묵직하게 흐른다. 보는 이의 내면에 파고들어와 사색하게 만드는 그녀의 섬세한 손끝은 우리 마음에 느리게 다가와서 흐른다.

눈보다 마음이 먼저 가 닿는 그녀의 사진은 사람을 위로慰勞하는 힘이 있다. 너무 빠르게 가지 말라고, 너무 힘들어말라고, 너무 외로워말라고. 너무 기죽지 말라고

사진속의 파리한 이파리들이, 힘없는 잡초들이, 사라져갈 그들의 그림자들이 그렇게 다가와 속삭인다.

사진속의 섬세하고 여린 사물들이 시린 우리의 등을 따뜻하게 감싸고, 36.5‘c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준다. 위로는 그렇게 그녀의 사진 밖으로 붉게, 붉게 번진다.

고현주(사진가)

갤러리 브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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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코리아방송 김한정 기자(merica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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