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트코리아방송]= 브릉 브릉 2톤 정도의 트럭이 흰 도복을 입은 별로 크지도 않은 사람의 배위를 거뜬히 넘어가자 TV를 보는 전국 팬들의 환호와 갈채소리가 요란하다. 이어 손을 가볍게 훌훌 털고 아무치도 않은 듯 태연하게 일어 선 사람이 남자아닌 미모의 여인이라는데 놀라게 했다.

78년 혜성처럼 사라진 당대 제일의 여검객 강청, 지금은?

1977년 초 묘기대행진의 TV프로에서 차력인 강청(본명 강원희)의 시범이었다. 그녀는 미모의 얼굴에 놀랄만한 실력을 갖춰 영화에 히로인으로 발탁되어 일약 주연스타로 각광을 밭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가 스크린에서 각광을 받고 스타덤에 오를 즈음 그녀가 갑자기 자취를 감추면서 지금까지 스크린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78년 혜성처럼 사라진 당대 제일의 여검객 강청, 지금은?

그러던 그가 근래에 가끔 충무로 영화배우협회에 얼굴을 보였다. 현재는 영화배우협회에 적을 두고 전남 여수에서 글로벌 명품투어인 천아 관광여행사 대표로 국내, 해외관광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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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청은 1959년 경상북도 영천시 대전동에서 태어나 허약한 몸 때문에 16세 때부터 중국무술 18기와 태권도, 합기도에 이어 차력까지 수련했다. 이렇게 강렬한 무술로 다져진 지체미와 활력 넘치는 다이내믹한 격투기의 실력은 뭇 남성들도 당하지 못할 실력가다. 또한 묘기대행진의 히로인으로 활약하며 빼어난 미모를 갖춘 그녀는 단번에 영화계의 스카웃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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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계의 대가인 김시연 감독의 “팔대장문”에 여자 주인공으로 스카웃 되어 여검객으로 호연을 보이면서 그녀의 연기는 높이 평가 되었다. “중원의 백일홍”, “무림오걸”, “사문의 섬객” 등에 출연하면서 각광을 받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방송에서 묘기대행진은 물론 청백전 외 화장품 모델까지 출연하여 유망주라기보다 기대되는 스타로 점쳐져 있었다. 그러나 그때를 같이하여 액션물이 하향세를 타면서 활동이 뜸해지더니 곧이어 당시 멜로물의 거장 정소영(미워도 다시 한 번 감독)감독의 히로인으로 캐스팅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추어 한동안 영화계에 아쉬움을 남겼다.

전 영화배우협회 거룡(문종석) 이사장은 강청의 전성시대에 같은 동료로써 그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강청은 어렸을 때부터 작은 소라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시골내음이 푸릇푸릇한 시골에서 비둘기처럼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고 현모양처로 사는 것이 꿈이었다. 그 당시 남편을 만나면서 화려한 영화계를 미련 없이 접고 남편을 따라 전남 여수로 내려가 아들, 딸을 낳고 현모양처로 결혼생활을 하면서 오늘의 자리를 굳혀왔다.

78년 혜성처럼 사라진 당대 제일의 여검객 강청, 지금은?

부부가 경영하는 여행사는 주로 중국, 일본, 대만, 베트남, 쾀, 태국, 러시 ,동남아, 유럽 싱가폴, 말레시아 대마도등을 위주로 해외활동을 하며 해외 활동이 없는 날이면 남편과 같이 국내여행을 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낸단다.

 

그녀는 여수에서 평범한 주부로 97년도부터 틈틈이 장애인 봉사 활동을 해왔고, 지금은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문화전라남도협회 전남여수시지부장과 사단법인 무예문화원 대도화랑무예 여수 지부장을 맡고 있다.

 

이렇게 항상 새롭게 도전하는 몸짓으로 치열하게 자신의 세계를 개척해 나아가는 강청은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노력하면서 봉사활동에도 이바지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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