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트코리아방송]= 존재의 알레고리, 심연에서 우주 사이를 떠도는 깃털

FREEDOM - 최기정展

모든 일은 소파에서 시작되었다. 원래 소파 속에 있었을 깃털 하나가 소파 밖으로 나와 있었다. 워낙 미세해 보이지도 않는 박음질 틈새로 삐져나온 것일 터이다. 혹 바깥에서 날아든 것이거나 아니면 우연하게 묻어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그렇게 깃털을 발견한다. 순백의 하얀색이 순수하다고 느꼈다. 미동에도 풀풀 날아오를 만큼 가볍고 나약하다고 느꼈다. 외부로부터의 반응에 쉽게 훼손될 만큼 무기력하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화려하다고 느꼈다. 그게 꼭 자기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억압된 욕망으로 쉽게 상처를 입는(욕망이 없으면 상처도 없다), 비루한 현실에서 화려한 비상을 꿈꾸는(현실에 대한 보상심리) 자기가 그대로 감정이입 되었다. 누군들 그렇지 않으랴. 우리 모두는 욕망을 거머쥘 때보다 놓칠 때가 더 많고, 일상은 언제나 이상에 비해 비루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깃털을 발견하고 자기를 감정이입한 것은 작가이지만, 이 발견, 이 사건은 작가의 경계를 넘어 모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개별성을 넘어 보편성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개별성으로 하여금 보편성을 담보하게 하는 것, 보편적인 경험으로 확대 재생산될 수 있는 개별적인 경험을 발견하는 것에서 예술은 시작된다. 일상은 이상이 깃드는 잠재적인 장이고, 현실은 비현실이 움트는 잠정적인 장소다. 모든 건 일상 속에 이미 있었고, 진즉에 현실 속에 주어져 있었다. 그래서 발견이 중요하다. 현실 속에 이미 주어져 있었던 비현실의 계기를 발견하는 것, 일상과 이상이 포개져 어서 상호 간섭하고 상호작용하는 지점을 발견하는 것이 결정적이다. 작가는 생리적으로 소재와 주제를 찾아서 현실 속을 헤매는 하이에나들이다. 그러다 감각레이더에 포착되면 낚아채는 것인데, 중요한 건 평소 레이더가 열려 있어야 하고, 기회가 오면 언제든 낚아챌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현실 속에 잠재하고 있는 발견, 사건, 순간, 계기를 냄새 맡는 오랜 배회(집요한 머뭇거림과 망설임)가 투자되어야 한다.

FREEDOM - 최기정展

아마도 작가에게도 이런 투자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를 투사할 수 있는 소재와의 대면이 가능했을 것이다. 자신처럼 나약하면서 화려한, 순수하기 때문에 상처에도 민감한, 이율배반적이고 자기모순적인, 양가적이고 자기분열적인 존재의 부조리(주제)에 맞닥트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깃털이 작가의 작업 속으로 들어왔다. 깃털은 섬세하다. 그걸 재현하기에 그림은 너무 투박했다. 그래서 예로부터 섬세함으로 정평이 나있는 세공사의 기법을 차용하기로 했다. 새김질기법이 그것이다. 새김질? 새김질을 통해 원하는 이미지를 얻는 장르가 있다. 바로 판화다. 판에 새김질을 하고 잉크를 올린 다음 프린트해 이미지를 얻는 것인데, 작가의 작업은 판화가 아닌 판 자체(판법으로는 재판작업)를 완결된 오브제의 한 형식으로서 제안한 경우로 보면 되겠다.

FREEDOM - 최기정展

이런 작가의 작업은 판화 중에서도 특히 정교한 것으로 유명한 메조틴트 판화를 연상시킨다. 사진이 등장하기 전 초상화 제작을 위해 널리 쓰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정치한 묘사가 그렇고, 주로 흑과 백으로 한정된 절제된 색채와 색채대비가 그렇고, 이런 정치한 묘사와 절제된 색채대비가 어우러져 마치 어둠 자체를 조형한 듯한(메조틴트를 검정기법으로 부르기도 한다) 정적이고 깊은 서정적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렇다.

FREEDOM - 최기정展

그렇게 작가의 작업은 마치 실물을 보는 것 같은, 이를테면 실제 깃털을 오브제로 사용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재현된 정치한 이미지는 말할 것도 없이 지난한 수공성과 섬세한 감각의 산물이다. 수공성은 그렇다 치고, 섬세한 감각은? 깃털은 미미하다. 존재감이 희박하다. 이처럼 미미하고 희박한 존재로부터 존재 일반을 관통하는 형상이며 의미를 일구어내려면 그 감각이 섬세하지 않으면 안 된다.

FREEDOM - 최기정展


그렇다면 작가는 이 섬세한 감각을 어떻게 부려놓는가. 작가는 투명한 아크릴 판에 송곳과 같이 끝이 뾰족하고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해 깃털 이미지를 새긴다. 거대한 깃털이 저 홀로 새겨지기도 하지만, 대개는 깃털과 깃털이 어우러져 이러저런 형상을 만드는 경우들이 많다. 그렇게 판 하나에 하나의 이미지가 새겨지기도 하고, 대개는 새김질 된 두 개 이상의 판이 하나의 화면으로 중첩되고 포개진다. 이때 판과 판 사이의 간격으로 인해, 그리고 아크릴 판 자체의 투명한 두께로 인해, 그리고 더러는 중첩된 각 판에 새겨진 다른 이미지로 인해 그림자가 생기고 입체감이 조성되고 공간감이 생겨난다. 이미지 자체는 평면이지만(새김질에 의한 요철을 생각하면 그 자체가 이미 평면은 아니지만, 여하튼), 그 이미지가 외부로부터의 환경(이를테면 빛)에 반응하면서 굴절돼 보이는 것이다. 작업 자체가 섬세해서 잘 드러나 보이지는 않지만(오히려 그래서 더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아크릴판 자체의 빛을 투과하는 성질이 입체적이고 공간적인 그리고 굴절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고 보면 되겠다. 그렇게 평면과 입체, 새겨진 이미지와 굴절된 이미지, 실제 이미지와 일루전(그림자로 나타난)이 그 경계를 허물면서 상호작용하는 시지각(혹은 착시?) 효과를 얻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아크릴판 자체도 투명하고 그 투명한 판 위에 새김질 된 이미지도 무색이어서 그 자체만으로는 작업의 실체며 존재감이 좀체 잘 드러나 보이지가 않는다. 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미미하고 희박한, 그래서 어쩌면 더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이미지를 얻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갖추고 있는 셈이지만, 여하튼. 그래서 작가는 배경화면으로 한지를 도입하는데, 이처럼 미미하고 희박한, 섬세하고 감각적인 무색무취의 미적 감수성(절제에 바탕을 둔? 감수성의 경제학?)을 자아내는 편이다.

이런 예외적인 경우가 없지 않지만 대개는 먹으로 검게 칠한 한지를 배경화면으로서 도입한다. 이로써 칠흑 같은 어둔 화면을 배경으로 정교하게 묘사된 깃털과 깃털을 소재로 재구성한 이러저런 형상이 대비되는, 마치 어둠 한가운데로부터 형상이 부유하는 것 같은 정적이면서 극적인 그리고 서정적인 화면 효과를 얻는다. 이처럼 화면에서 어둠은 단순히 모티브를 강조하기 위한 형식적 장치 이상의 일정한 상징적 의미를 획득하는데, 이를테면 존재론적으로 심연을 그리고 공간적으로 우주를 표상한다. 그리고 흑과 백이 대비되는 화면 자체는 존재의 양면성이며 양가성을 상징한다. 그렇게 작가의 작업은 어둠 속을 떠도는 깃털을 매개로 심연에서 우주에 미치는 존재론적 스펙트럼을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작가의 작업은 칠흑 같은 어둔 화면을 배경으로 하늘거리는 깃털을 보여준다. 대개는 깃털 단독으로서보다는 깃털과 깃털이 어우러져 이러저런 형상을 만드는데, 이를테면 깃털이 모여 숲을 이루기도 하고, 자잘한 깃털들이 모여 거대한 날개 형상을 일구기도 하고,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시간을 표상하기도 하고, 생성과 소멸을 무한순환 반복하는 자연의 생리를 조형하기도 하고, 존재의 생명(숨)을 상형하거나 한다. 감각적 대상과 관념적 대상, 현실과 초현실을 아우르면서 서사의 확장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서두에서 말했지만, 깃털은 작가(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의 자화상으로서 도입된 것일 수 있다. 이를테면 깃털은 자유롭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그리고 자유롭지 못한 현실에 대한 부정을 증언한다. 자유롭고 싶은데 정작 현실은 자유롭지가 못하다.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자유를 욕망한다. 우리는 언제나 없는 것을 욕망한다. 결여고 결핍이다. 결여고 결핍이 아닌 것은 욕망이 아니고 욕망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욕망은 언제나 불가능한 기획이고 이미 알려진 실패다. 그래서 부조리와 역설 그리고 자기모순이 인간의 실존적인 조건으로서 제안될 수가 있었다. 깃털이 작가의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 수 있다는 말은 바로 그런 의미였다. 자유에 대한 욕망 자체가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증언해주는, 그런 이중적이고 양가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존재의 차원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여하튼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기에 욕망하기를 그만둘 수도 없는 일이다. 불현듯 어둠 속에 하늘거리는 깃털이 칠흑 같은 우주 속을 저 홀로 떠도는 미아 같고 존재의 알레고리 같다.

전시일정 ▶ 2016. 12. 22 ~ 2016. 12. 28

갤러리 담(Gallery Dam)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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