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과 광장문화"

(사진 글 : 사진평론가 장한기)

그 해의 서울 광장은 집회와 시위로 매 주말 마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개방화시대의 대표적인 의사소통의 한 방편이 광장이란 특수한 공간을 매개로 소리를 높이고 있었으며, 이는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거나, 집단의 결집된 힘을 과시하여 요구 사항을 관철 시키고자 할 때 나타내는 투쟁의 한 방편이 되었다. 최근의 광장집회나 시위형태는 과거와는 달리 형식이나 표현방법에서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나, 아직도 주관적인 이해타산의 집단이기로 치닫는 사례가 빈번함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형태는 특정 집단의 이기는 관철시킨다 하더러도 부수적으로 따르는 국민들의 희생을 전재로 하고 있음을 감안 한다면, 보다 평화적이고 따뜻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문화 행사로 승화시켜 내면의 불만을 은유적으로 표출하여, 보다 전향적인 광장 문화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광장의 의미는 넓은 마당이라는 뜻이지만, 형식상의 장소나 공간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의사소통을 꾀할 수 있는 의식상의 공통적인 공간도 포함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매체의 활용도 포함시켜 다양하고 다각적인 광장의 마련과 수용이 요구되고 있다.

한국의 근대적인 광장 문화의 역사적 근거와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그 근원은 일제 통치하의 억압된 민족 탄압에 항거하는 해방 운동에서 부터 출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침략자의 눈을 피해 지하운동으로 일관하던 애국지사들의 독립운동이, 힘의 원천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던 시대에 국가의 장래를 염려하며, 국권회복의 준비를 위한 암약 활동과 지하운동이 결정적인 기회를 맞아 깃발을 들고 뛰어 나온 3.1독립운동이 그 역사적 배경이 되고 있다.

이러한 광장 문화의 시발은 역대 정권의 변화 과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듯이, 4.19 학생사건이나, 5.16 군사 정권시절의 민주화 운동 등으로 극심한 진통을 겪기도 하였다. 80년대의 서울의 시청 앞과 광화문, 서울역과 남대문 일대를 비롯한 서울 시가지의 광장은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시위대의 투석전과 화염병의 투척 등으로 몸살을 알기도 했었다. 이러한 시위는 진압 부대의 최루탄 발사로 이어졌으며, 시위가 있는 주말의 오후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신촌의 대학가나 태평로 일대의 빌딩가 에서는 시위가 있는 주말의 오후가 되면 의례히 셔터를 내리고 철시단계로 접어들곤 했었다.

가끔 고층 빌딩에서 내려다본 시위 현장의 시가지는 자욱한 최루탄 가스로 인해, 시위대와 진압부대원을 제외한 인적은 자취를 감추었으며, 이따금 시위 정보를 접수하지 못한 일부 시민들이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체 갈팡질팡하는, 낮 설지 않은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당시 필자는 태평로의 빌딩가에서 산업주자로 뛰고 있을 때 여서, 시가지에서 벌어지는 시위현장을 수시로 지켜 볼 수 있었다. 그 후 문민정부와 국민의정부로 이어진 90년대에 접어들면서 광장 주변의 서민들의 생활 안정을 위해, 화염병과 최루탄의 사용이 자재 되었으며, 최루탄을 대신한 물대포가 등장하여 과격시위의 열기를 식히게 되었다.

이 후 광장 시위도 점진적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였으며, 묵시적으로는 평화적 시위가 자리 잡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2002서울월드컵을 계기로 우리의 광장 문화는 일대 변혁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붉은 악마라는 닉네임의 축구팬 써포터즈가 자리 잡고 있었다. 관중 동원에 절대적 기여를 하게 된 휴대폰과 인터넷 통신망이 이를 가능하게 해 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광장 문화는 속박에서 부터 해방으로 가는 항일운동과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젊음의 혈기와 끼를 발산하는 체육과 문화의 광장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 해의 여름은 그렇게 우리들에게 제2의 민족 해방과도 같은 환희와 희망의 축제로 다가왔으며, 서울시청앞과 광화문 일대를 수백만 명의 붉은 티셔츠의 인파로 들끓게 하였으며,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온 국민이 하나가 되기도 했었다. 이를 계기로 2002년 서울시청앞 광장은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세계속의 문화의 광장으로 인식되기에 충분했었다. 이듬해 서울시는, 시청 앞 광장을 "월드컵 신화의 광장"으로 만들자는 여론에 힘입어 "서울광장"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는 외형만 중요한 게 아니라 내면의 의식의 변화를 통한 진정한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광장으로 그 모습을 바꾸어 나가게 된 것이다.

세계적으로 광장 문화가 발달된 도시로는, 신의 나라이자 세계인의 성지로 통하는 로마를 들 수가 있을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든 광장 문화의 원초적 배경은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해방 운동에서 비롯되었다. 현재는 모두가 아름다운 문화의 광장으로 발전 유지되고 있으나, 그 내면에는 민족의 아픔과 좌절과 희망이 함께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용과 포용, 용서와 화해의 결과이다.

로마의 광장 문화의 시초도, 노예의 반란과 이를 막으려는 귀족들과의 대결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으며, 반란을 일으키다가 잡혀온 노예는 원형 극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삶과 죽임의 시나리오로 연출된 무대에 등장하여, 갑옷과 투구와 창과 방패로 완전무장한 고도로 훈련된 마상의 기사와 싸워야 하는 불공정한 개임으로 시작되었다. 삶과 죽음의 대결에서 맨몸에 창 하나로 싸워야 하는 노예의 처절한 삶의 외침과 아픔과 희생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 세계인을 자유와 평등, 평화와 사랑으로 인도하는 세계인의 성지로 통하는 로마의 길을 만든 것은 아닐까?

이러한 20세기의 오프라인 광장문화는 뉴-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면서, 전자문명과 통신기술의 발달에 의해, 그 유형이 온라인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것은 최루탄과 물대포를 마주하던 그러한 육체적 충돌의 광장이 아니라, 논리적 이론과 정신적 신성함을 바탕으로, 불합리와 부조리를 추방 하고자 하는, 합리성이 강조되는 정신문화의 광장으로 탈바꿈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온라인상의 정신문화의 광장이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데에는 그 목적이 투명하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기 때문이며, 불특정 다수의 의견도 수렴하여 조직이나 단체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심화 발전시켜 나가자는 데서 그 의의를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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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코리아방송 편집국장 장한기(hkjang10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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