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 꽃 좋아하지? 야래향이 피었으니 저녁에 집으로 와봐.”-

40여 년 전의 일이다.

"너 꽃 좋아하지? 야래향이 피었으니 저녁에 집으로 와봐.” 꽃이 피었는데 왜 저녁에 오라는 것일까. 당시 서울시교육위원회에서 근무하던 이종사촌 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야래향’은 아열대성 식물로 밤에 꽃이 피고 낮에는 오므라들어 쉬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꽃이다. 처음 들어본 ‘야래향’ 꽃을 보려고 토요일 저녁 삼양동 형 집을 찾아갔다.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콧속으로 들어오는 짙은 향기는 그 꽃이 토해내고 있었다.

꽃을 좋아했던 형은 대만으로 해외출장을 갔다. 호텔로비에 핀 ‘야래향’ 꽃의 향이 좋아 번식방법을 듣고 한 가지를 얻어 물수건에 싸 귀국하게 된다. 요즘은 동식물을 반입할 경우 통관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우나 당시 그 정도는 공항통관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꺾꽂이로 뿌리내린 ‘야래향’ 화분을 선물로 받아들고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창경원으로 곽동순 식물원장을 찾아갔다. 꽃을 좋아해 창경원 식물원을 자주 찾았던 터라 곽 원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래향’ 나무가 식물원에 있느냐고 물어보았는데 없다는 답변이다. 남산 식물원에 올라 찾아봤으나 그곳에도 없었다. 그로부터 3년 후에야 창경원 식물원과 남산식물원으로 들어오게 된다.

분양받은 이듬해 여름, '야래향’에 관한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인천의 차이나타운을 찾았다. 가파른 좁은 골목길에는 누가 봐도 중국인이랄 수 있는 두 여자가 계단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야래향 꽃 사진을 보여주며 “이 꽃이 무슨 꽃입니까?” “응 기생 꽃이네” “기생 꽃이요? 야래향 꽃 아닙니까?” “그래 야래향, 꽃 필 때 방안에 두면 사람이 죽어요.” 깜작 놀랐다. 사람이 죽는다는 얘기는 과장되어 보이지만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꽃이 피면 집안은 물론 골목이 시끄러울 정도로 향이 퍼져나간다. 향기가 천리에 이른다는 ‘천리향’보다 더 향이 짙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뒤로는 밀폐된 공간에 화분을 두지 않았다. ‘夜來香’은 우리말로 풀이하자면 ‘밤에 오는 향기’로 풀이할 수 있어 중국인들은 기생 꽃으로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주택에 살 때다. 꽃이 피면 머리가 아플 정도로 향기가 나 배란다에 내놓는다. 꽃 향은 집안뿐 아니라 골목까지 퍼져나가고 오가는 사람들이 향기 따라 집안으로 들어와 나무 이름을 묻고 가기도 하였다. 꽃 옆에 옷을 걸어두면 향이 옷에 배어 남자가 향수를 뿌리고 다닌다는 핀잔을 받았던 적도 있었다.

‘야래향’은 향기만큼이나 널리 퍼져나가고 있어 요즘 동네 꽃집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향은 모기를 쫒는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꺾꽂이가 잘 되어 번식이 쉽고 겨울철 관리만 잘 해주면 누구나 쉽게 기를 수 있다. 물과 햇빛을 좋아하는 식물로 잘 기르면 일 년에 세 번까지 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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