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생명, 자연의 궤적을 좇는 순례, 남여주의 <Reflective> 연작

남여주의 세계는 물의 세계이다.

생명과 자연을 투영하고, 반사하고, 묵상하는, 곧 “reflective”하는 물의 세계이다.

태고부터 존재해 온 온갖 생명과 자연을 품은 우주가 물이라는 남여주 고유의 렌즈를 통해 투영된다. 이는 캔버스 위에 아크릴과 레진(resin)과 비즈(beads)를 활용한 작가의 독자적인 방법론을 통해 반사되고, 우리로 하여금 작가와 함께 이를 묵상하도록 이끈다. 남여주의 물의 세계는 우리의 일상과 상식을 넘어선다. 이 공간에서 삼라만상의 유한한 생명체들이 무수히 조응하고, 중첩되고, 화해하고, 순환하면서 무한한 이상향에 이르는 세계이다.

일찍이 그리스의 밀레토스학파와 엠페도클레스가 세계의 온갖 현상 저변에 존재하는 만물의 근원으로 밝혔던 4원소의 하나, 물은 작가의 세계에서 다른 원소인 흙과 불과 공기를 서로 충돌하지 않으면서 매우 청명하고 조화로운 방법으로 품어낸다. 남여주의 작업에서 이 원소들은 우선, 주요 색(色)으로 존재를 드러낸다. 물과 바람의 청정한 흐름은 푸른색, 옥색, 회청색, 울트라마린 같은 색조로, 흙과 불의 장중한 성질은 노랑, 연두, 갈색, 인디언핑크, 버건디, 붉은색 같은 색조로 존재감을 암시한다.

물을 중심으로 모인 4원소를 근간으로, 남여주가 삼십여 년 가까이 작가생활 대부분과 국내외의 수많은 전시들에 거쳐 천착해온 주제인 생명과 자연의 형형색색 요소들은 작가의 작품세계에서, 태고 적부터 그래왔듯이 변화무쌍 하면서도 고요하게, 허(虛)하면서도 실(實)하게, 무질서 한 듯 질서롭게, 형상을 지니면서도 무형적으로, 구체적이면서도 관념적으로, 이질적이면서도 친숙하게 공존하고 있다. 순전히 서양적 매체와 조형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관람자의 시선과 마음가짐을 고아한 진경산수 동양화 화폭을 관조하는 자세로 가다듬게 만드는 남여주의 작품에서는 서로 갈등을 빚고 충돌과 상충을 야기할 수 있는 이 세상 요소들이 투명하게 흐르는 듯 표현된 물과 바람처럼 피차를 스치면서도 설 자리를 내어주는 공존과 상생의 풍경을 보여준다.

1990년대 초·중반에 기하학적 색면들 위에 자유로운 제스트로 얼룩과 터치를 가미한 중첩 이미지들을 통해 “무의식과 의식”, “감성과 이성”의 통합을 꿈꾸던 청년작가는 이후, 원형 물방울 형상들을 통해 투영된 세상 이미지에 몰두한 이래 오랜 세월동안 마치 구도자처럼 지순하게 물의 궤적을 좇는 순례의 길을 걸어왔다. 2000년대 초·중반에 정점에 달한 다색조의 물방울 형태를 지닌 원형의 우주, 세포, 생명 이미지로 이루어진 다양한 구성 시리즈는 이후, 원형이라는 틀로부터 물, 생명, 우주를 해방시키는 물꼬를 튼 후 새로운 세계로 진화되었다.

남여주의 근작에서는 맑고 투명한 물에 잠긴 듯한, 작가도 함께 물속에서 관조하는 듯한 시점으로 그려진, 물의 흐름이 마치 바람의 흐름처럼 청정하게 느껴지는 전면구도의 화폭에서, 구상, 반추상, 때로는 추상화된 나뭇잎, 꽃, 가지, 물고기, 새, 용기, 등 각양각색의 산천초목과 생명체 이미지들 및 인간의 흔적들이 자유롭게 부유한다. 이 공간에서 모든 생명체를 품고 포용하며, 흘러 보내주기도 하고, 종종 빗살무늬 토기나 달항아리 같은 도기 속에 스스로 담기어 자신을 자유롭게 그 그릇의 크기와 용도에 맞추고 동화되기도 하는 물의 세계는 작가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넌지시 드러내는 동시에, 그가 이 주제에서 완숙기에 이르렀음을 말해준다.

물을 투영해서 보는 자연이미지, 물의 세계에서 서로 동화되고 상생하는 생명과 자연이라는 주제를 놓치지 않고 이십여 년 이상 그 궤적을 좇아온 순례의 결실을 보여주는 남여주의 작업을 연대기적으로 대략 훑어보면 작가의 성숙한 연륜을 쉽사리 가늠할 수 있다. 아울러서 이는 작가의 사람됨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물은 ‘난체’를 하지 않는다. 자기 마음과 몸을 주위 존재들과 같이 두거나 도리어 스스로 낮추어 자처하여 낮은 데로 흐른다. 물은 높은 데에 마음을 두고 분수를 넘어 거슬러 오르기를 꾀하지 않는다. 요즘같이 어수선한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많다면 우리의 복이리라. 물은 가는 곳마다 도처에서 모두를 수용하고 공급하며 부족한 것은 채우고, 넘치면 넘치는 대로, 흐르는 대로 동화된다. 물은 흘러가다 막히면 돌아서가는 지혜가 있고, 시궁창 물까지도 융합하는 포용력과 어떠한 그릇에도 담기는 융통성이 있으며, 바위도 뚫는 인내와 끈기, 그리고 장엄한 폭포를 뛰어내려 헌신하는 용기, 유유히 흘러 바다를 이루는 대의가 있다. 물로서 물꼬를 터서 또 다른 세상으로 열리는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물에 대한 작가의 상념은 노자의 무위자연 철학과 상통하기도 한다.

작가의 겸허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업에서 감지되는 구도자적, 순례자적인 성격은 비단 지난한 세월에 거친 한 주제에 대한 천착 때문만은 아니다. 가령, <Reflective> 연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과 바람의 흐름 사이로 흔들리는 나뭇잎들은 실존하는 잎처럼 보이지만 가상의 존재임을 알게 된다. 각자 실재인듯 하지만 여러 다른 종자의 이파리들이 한 가지에 달려있거나, 한 뿌리에서 나온 모습은 얼핏 서양화의 오랜 전통인 바니타스(Vanitas)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곧 인생, 생명, 부귀영화의 덧없음과 다가오는 죽음을 상기시키는 방법론을 차용한 듯 보여진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는 오히려 서로 상반되는 이질적인 성질의 우주 구성인자들이 융합되어, 조화로운 세계로 지향해가는 이상향을 대변하는 데 있다. 무의식의 흐름 수법으로 그려진 듯한 남여주의 물의 공간 속에 단순화된 물고기나 새 같은 생명체의 형상 드로잉 역시 주제와 기법에서 얼핏 앙드레 마송의 모래그림, <물고기들의 전쟁> 연작이나 마크 로스코의 인류신화와 집단무의식을 주제로 한 초기 작업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남여주의 작업은 오히려 이질적인 요소들끼리의 관용과 포용, 곧 똘레랑스를 통한 상생의 유토피아를 꿈꾼다.

최근 들어 작가는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린 후, 그 위에 전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레진을 바르거나 투명하고 자잘한 비즈를 붙이는 물성의 활용을 통해 한층 기법과 관점의 폭을 넓히었다. 이전 작품들이 작가 남여주가 물을 투영해서 보는 자연과 생명과 우주의 이미지를 관람자들에게 자신의 조형어법과 시선으로 제시했다면, 이제 ‘투영하고’ ‘사색하는’ 것과 아울러서 “Reflective”의 또 다른 의미인 ‘반사하는’ 수단을 통해 작품에 시간성을 도입하고 있다.

즉 맑은 레진과 더불어 투명한 작은 구슬들로 뒤덮인 화면은 자연광선의 시간대나 실내 조명의 방향에 따라, 혹은 관람자가 선 위치나 움직이는 동선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각도에서 비추는 빛을 그대로 반사하는 효과를 지니고, 이로 인해 관람자는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어 각기 다른 변성(metamorphoses)의 과정에 있는 세계를 접하게 된다. 가령 투명 비즈로 덮인 도기 안에 그 크기와 용도에 맞게 담긴 물과 도기 밖의 물은, 관람자의 동선이나 관점 및 시간대에 따라 물질의 비물질화(dematerialization) 경로를 통해 그릇 안팎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면서 그 존재가 있거나, 없거나, 부분적으로 잔존하게 되고, 우리는 각자의 시선과 자세에 따라 서로 다른 이미지와 세상을 접하게 된다.

이는 죽음이 없이는 생명이 있을 수 없는 세계, 곧 유구한 존재와 부재,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고 순환되는 자연과 우주의 세계에 대한 작가 남여주의 성찰을 말해준다. 아울러서, 물길이 끝나는 듯 보이는 곳에 또 다른 물꼬를 통해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유한이 궁극적으로 무한으로 이어지는 궤적을 좇는 작가의 앞으로도 남아있는 순례의 여정을 넌지시 암시해준다. 우리에게는 참으로 기대되는 여정이다. 

조 은 영 (원광대 미술사 교수/ 현대미술사학회 회장)


■ 남 여 주 | NAMYEOJOO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동 대학원 졸업

개인전 | 2015 Gallery H 초대전 (서울) | 2014~2009 MANIF (서울. 예술의 전당) | 2014 그림갤러리 (창원) | 2012 레지나 갤러리 (용인) | 2012 리하우스 갤러리 (서울) | 2011 우모아 갤러리 (용인) | 2007 한국현대미술제(서울. 예술의 전당) | 2006 한국현대미술제(서울. 예술의 전당) | 2005 광조우 아트페어(중국 광조우) | 2005 상하이 아트페어(중국 상하이) | 2004 MANIF 10! 04 (서울. 예술의 전당) | 2003 금산 갤러리 (서울) | 2003 오스카 로만 갤러리(멕시코 시티) | 2002 오사카 부립 현대 미술관 (일본 오사카) | 2002 고바야시 화랑 (일본 동경) | 2001 금산 갤러리 | 1995 모인화랑 | 1993 단성 갤러리

단체전 | 2015 SOAF (코엑스) | 2015 인천아트페스티벌전 (갤러리GO) | 2015 채림전 - 채색집단(한전아트센터) | 2014 "꽃피다"전 -그림갤러리개관 기념전 (그림갤러리) | 2014 K Fine Art Gallery 개관전 (K Fine Art Gallery) | 2014 인천현대미술의 흐름전(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 2014 컨템퍼러리 아트페어 (호텔 현대울산) | 2014 W 여성작가초대전-이끌림전 (W 미술관. 익산) | 2014 Renovation (채림전. 한벽원 갤러리) | 2014 제28회 Asia 국제 미술전람회(Kinmen Cultural Park Historical Folk Museum, 대만) | 2014 Korean Fashionism Art (갤러리 가이아) | 2013 아트엑스포 말레이시아(쿠알라루움프 무역 컨벤션센터) | 2013 아트광주 13 (김대중 컨벤션센터) | 2012 남여주. 최순민 2인전 (용인 다미안 갤러리) | 2012 홍콩 호텔 아트페어 | 2011 제 26회 ASIA 국제 미술전람회 (서울, 예술의 전당) | 2010 Star & Blue Artist Hotel Art Fair (서울. 힐튼호텔) | 2009 Next Generation (서울, 갤러리루미나리에) | 2005 KIAF (서울, 코엑스) | 2004 북경 아트페어 2004 (북경, 중국) | 2003 상하이 아트페어 2003 (상해, 중국) | 2003 서울 아트페어 (예술의 전당) | 2003 대구 아트 엑스포 '03 (대구전시컨벤션센터) | 1990~2015 채림전외 다수(150여회) 

수상 | 1996 중앙비엔날렌 (서울 시립 미술관) | 1994, 1992, 1989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입선 국립현대 미술관) | 1993, 1992, 1991 MBC 미술대전 (장려상, 입선 예술의 전당) | 1992 미술세계 공모전 (특선, 경인 미술관) | 1991 현대미술 대상전 (우수상, 디자인 포장센터) | 1990 신 미술대전 (대상, 디자인 포장센터)

작품소장 | 국립현대미술관(아트뱅크) | 서울시립미술관 | 광주시립미술관 | 그림갤러리(창원) | Y&S(HK) International Trading CO., Limited |  국제예술유치원(창원)

현재 | 원광대학교 및 인천카톨릭대학교 강사 


가나인사아트센터

2015. 6. 3(수) ▶ 2015. 6. 8(월)

Opening 2015. 6. 3(수) PM 5:30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 T.02-720-4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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