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 1963.4.9~ )는 프랑스의 권위있는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Louis Vuitton)과 미국의 브랜드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를 이끄는, 세계 패션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패션 디자이너 중 하나이다. 레트로 패션, 대중 문화, 현대 미술 등 문화를 완벽하게 읽고 자신만의 아이디어와 디자인 철학으로 승화시킨 그의 디자인은 단순한 옷과 액세사리를 넘어서 하나의 문화가 되고 있다. 마크 제이콥스는 옷이란 고결한 예술 작품이 아니라 판매가 되어야 하는 상품이며 자신은 순수 예술가가 아니라 패션 디자이너라고 밝히고 있는데, 그의 디자인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우고 있으며독창성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마크 제이콥스는 ‘상류층의 고급스러움과 거리의 천박함’이라는 양극단을 오가는 넓은 디자인 스펙트럼과 ‘천진난만함을 잃지 않는 천재’라는 인간적인 매력으로 전 세계적으로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다. 그는 2010년에는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가장 영향력이 높은 인물 100인’에 뽑혔으며, 패션 이외에도 동성애 결혼 지지, 중국과 티벳 문제 등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하기도 하고, 화려한 사생활로 인해 일거수일투족이 기사화되고 있는 스타 디자이너이다.

뉴욕의 유태인 소년 마크 제이콥스, 패션의 열정을 품다

마크 제이콥스는 1963년 4월 9일에 뉴욕의 유복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연예계 스타들을 관리하는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William Morris agency)의 유능한 에이전트였는데, 마크 제이콥스가 7살이 되던 해에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이때부터 마크 제이콥스는 어머니의 3번의 재혼으로 뉴저지(New Jersey), 롱 아일랜드(Long Island), 브롱크스(the Bronx)로 이사를 다니며 불안정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어머니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고, 전혀 자식들을 돌보지 않았다.”고 밝혔는데 17살이 되던 1980년, 어머니와 형제들을 떠나 친할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하였다.

마크 제이콥스의 할머니는 교양이 넘치는 세련된 귀부인으로 뉴욕 어퍼 웨스트(Upper West)의 유서 깊은 빌딩인 마제스틱(the Majestic, 115 Central Park West.)에 살고 있었다. 마크 제이콥스는 잡지 와의 인터뷰에서 버그도프 굿맨(Bergdorf Goodman), 삭스 피프스 에비뉴(Saks Fifth Avenue), 로드 앤 테일러(Lord &Taylor), 본위트 텔러(Bonwit Teller)에서 쇼핑을 즐기던 멋쟁이 할머니는 그에게 손뜨개를 가르쳐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항상 용기를 북돋아 주는 등, 그의 인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마크 제이콥스의 패션에 대한 열정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는데, 1976년 13살이 되던 해, 당시 가장 전위적인 옷을 판매하던 뉴욕의 부티크 에 찾아가 돈을 안 받아도 좋으니 창고에서라도 일하게 해달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그의 이런 바람은 2년 후 이루어졌는데, 샤리바리에서 옷을 정리하고 마네킹의 옷을 입히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평소 동경하던 패션 디자이너 페리 엘리스(Perry Ellis, 1940~ 1986)를 직접 만나는 행운을 얻게 되었는데, 이 만남은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되었다. 페리 엘리스는 디자이너를 꿈꾸는 마크 제이콥스에게 뉴욕 파슨스 스쿨(the Parsons School of Design)에 진학하라고 권유하였고 마크 제이콥스는 그의 충고를 따라 1981년 파슨스 스쿨에 입학하였다. 졸업한 해인 1984년 그는 ‘올해의 학생상(the Design Student of the Year Award)’, ‘체스터 와인버그 황금 골무상(Chester Weinberg Gold Thimble Award)’, ‘페리 엘리스 황금 골무상(Perry Ellis Gold Thimble Award)’을 모두 수상하는 등 재능있는 미래의 디자이너로 떠올랐다.

뉴욕 패션의 신성: 마크 제이콥스 라인의 시작

마크 제이콥스의 졸업 컬렉션은 영국의 화가 브리짓 라일리(Bridget Riley, 1931~)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옵아트 문양의 스웨터 3벌로 구성되었다. 할머니가 직접 손으로 떠준 사다리꼴 모양의 오버사이즈 스웨터들은 그의 패션 비지니스의 시작점이 되었다. 샤리바리의 주인 바바라 바이저(Barbara Weiser)가 이 재기 발랄한 스웨터들을 주문하면서, ‘마크 제이콥스 포 마크 앤 바바라(Marc Jacobs for Marc and Barbara)’라는 라벨을 달고 그의 꿈의 부티크, 샤리바리에서 판매되었다. 또한 젊고 재능 있는 디자이너를 찾고 있던 뉴욕의 의류회사 루번 토마스(Reuben Thomas)의 로버트 더피(Robert Duffy)의 눈에 띄어 마크 제이콥스는 ‘스케치북(Sketchbook)’이라는 새로운 라인의 디자인을 맡게 되었다. 마크 제이콥스와 로버트 더피는 곧 ‘제이콥스 앤 더피(Jacobs Duffy Designs, Inc.)’라는 작은 회사를 설립하였고, 1984년에 시작된 그들의 파트너십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마크 제이콥스의 ‘스케치북’ 컬렉션은 곧 뉴욕의 패션 언론들의 호평을 받기 시작하였다. 1985년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는 그의 작품을 가리켜 “젊고 기성세대에 반항하는 스타일”이라고 부르며 “신비롭고 천진난만한 우아함에 1960년대의 활력이 더했다.”고 평했다. 모회사인 루번 토마스(Reuben Thomas)가 문을 닫게 되자, 1986년 마크 제이콥스는 자신의 이름을 딴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 컬렉션을 발표하고, 같은 해 미국 보그(Vogue)지는 “패션계의 7인의 떠오르는 별” 중 한 명으로 그를 소개하였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한 마크 제이콥스 니트 스웨터

1985년 라인을 위해 발표한 핸드 니트 스웨터로, 폴카 도트 무늬, 왼팔의 스마일 얼굴이 유머러스함을 더하고 있다.

그의 신선하고 유머가 넘치는 디자인은 언론의 환영을 받았지만, 마크 제이콥스와 그의 사업 파트너 로버트 더피의 행보는 순탄치 않았다. 그들은 거듭되는 투자사들의 부도, 도난, 화재 사고에 이어 심지어는 세관에 패션쇼 작품들이 묶여 쇼가 취소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패션 업계에서 고군분투하였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1987년 24세의 마크 제이콥스는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CFDA : the Council of Fashion Designers of America)가 수여하는 페리 엘리스 신인 디자이너 상(the CFDA’s Perry Ellis Award for New Fashion Talent)를 수상한 최연소 디자이너가 되었다.

최신 팝 음악과 청년 문화의 전도자: 그런지 패션(Grunge Fashion)

1988년 마크 제이콥스에게 중요한 기회가 찾아왔다. 로버트 더피와 함께 창립자 페리 엘리스(Perry Ellis) 사후 곤경을 겪고 있던 페리 엘리스의 여성복 라인을 이끌게 된 것이다. 당시 페리 엘리스 브랜드는 랄프 로렌(Ralph Lauren), 캘빈 클라인(Calvin Klein)과 함께 뉴욕 패션을 이끄는 대표적인 브랜드였다. 25세의 나이에 마크 제이콥스는 연매출 1억 달러가 넘는 메이저 브랜드의 디자이너 반열에 서게 되었다. 1989년에는 나중에 구찌의 수석 디자이너가 되는 톰 포드(Tom Ford, 1961~ )를 보조 디자이너로 영입하기도 하며, 페리 엘리스 특유의 다채로운 컬러감의 유머러스한 아메리칸 캐주얼 디자인을 발표하였다.

마크 제이콥스는 1992년 페리 엘리스의 옛 영광을 넘어선, 현재에도 회자되는 문제의 컬렉션을 발표하였다. 1993년 봄/여름 페리 엘리스의 ‘그런지(Grunge)’ 컬렉션은 시애틀 출신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 너바나(Nirvana)와 펄 잼(Pearl Jam)의 음악과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구겨지고 너저분한 의상들의 향연이었다. 마크 제이콥스는 세인트 마크 플레이스(St. Mark’s Place)의 중고샵에서 2달러를 주고 산 낡은 플란넬 체크 셔츠를 이탈리아로 보내 한 마에 300달러가 넘는 체크 무늬의 최고급 실크 원단을 제작하고 이를 이용해 셔츠를 만들었다. 또한 새틴 소재의 버켄스탁 신발(Birkenstocks), 닥터 마틴 군화(Dr.Martens), 검은 색 니트 모자, 한쪽이 흘러내리는 큰 사이즈의 스웨터, 싸구려 방한 내의처럼 보이는 캐시미어 스웨터, 고급 실크 원단의 컨버스 운동화(Converse), 그래픽 티셔츠, 찢어진 청바지 등을 자유롭게 믹스 앤 매치하여 발표하였다. 물질 만능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좌절과 저항을 나타내는 넝마주이 거리 패션이 최고급 소재의 하이 패션으로 승화된 컬렉션이었다. 이 컬렉션은 페리 엘리스의 고상한 상류층 고객과 경영진, 패션 언론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고, 는 이에 대해 ”난장판(a mess)”라고 혹평하기도 하였다.

전설의 그런지 컬렉션은 “아무도 수천 달러를 호가하는 꼬깃꼬깃한 체크 셔츠를 사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페리 엘리스사 경영진의 결정으로 생산이 취소되고, 마크 제이콥스와 로버트 더피는 바로 해고를 당했다. 또한 이 컬렉션을 마지막으로 페리 엘리스 여성복 라인도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마크 제이콥스는 “그런지의 창시자(the Guru of Grunge)”라는 칭호와 함께, 1992년 미국 패션 디자이너협회(CFDA)가 주는 ‘올해의 여성복 디자이너 상(Womenswear Designer of the Year)’을 차지하는 영예를 얻었다. 이후 마크 제이콥스는 1990년대 안티 패션(anti-fashion)운동을 이끄는 뉴욕 패션계의 독창적이고 대담한 디자이너로서 주목받게 되었고 성공적인 행로를 걷게 되었다.

마크 제이콥스의 그런지 컬렉션은 팝 음악과 대중 문화에 대한 그의 정통한 이해에 기반을 두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뉴욕의 유명 디스코 클럽 ‘스튜디오 54(Studio 54)’에서 살다시피 한 그는 1970, 1980년대의 대중 음악과 클럽 문화를 몸소 체험했다. 그는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William Morris agency)의 사장이었던 삼촌의 도움으로 음악담당 에이전트와 친하게 지내면서 뮤지션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고, 블론디(Blondie), 이기 팝(Iggy Pop), 소닉 유스(Sonic Youth),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와 같은 뮤지션들의 음악뿐만 아니라 그들의 차림새에 매혹되었다. 팝 음악과 뮤지션들의 감각적인 패션 스타일은 마크 제이콥스의 패션 디자인에 젊음, 활력, 대담함과 같은 차별성을 더해주었고, 1990년대 젊은이들의 시대 정신을 대표하는 디자이너가 되는 토양으로 작용하였다.

1993년 마크 제이콥스는 동업자인 로버트 더피와 함께 ‘마크 제이콥스 인터내셔널(Marc Jacobs Internationa)’이라는 회사를 창립하고 1994년 가을/겨울 마크 제이콥스 컬렉션을 통해 컴백하였다. 우먼스 웨어 데일리(Women’s Wear Daily)는 그의 컬렉션을 두고 “약간은 펑키하고, 약간은 쓰레기 같고, 약간은 시크하다(A little funky, a little trash, a litte chic)”라고 평하였다.

‘예술’을 접목한 전통 비틀기: 우아한 프랑스 전통 브랜드 ‘루이비통’에 젊은 감각을 입히다

1997년 1월 7일, 오랜 협상 끝에 마크 제이콥스와 로버트 더피는 143년 전통의 프랑스의 루이비통과 각각 아트 디렉터, 스튜디오 디렉터로서 고용계약을 체결하였다. 루이비통의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는 마크 제이콥스에게 루이비통(Louis Vuitton)의 패션 액세서리 라인은 물론 브랜드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복과 남성복 라인을 런칭하는 임무를 맡겼고, 마크 제이콥스 브랜드의 지분을 인수하여 그가 재정난에 시달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디자인 작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때부터 마크 제이콥스는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Louis Vuitton)과 뉴욕의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 브랜드의 수장으로 파리와 뉴욕을 오가며 디자인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혁신적인 안티 패션의 젊은 디자이너가 전통적인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을 잘 이끌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곧 성공적인 컬렉션들을 선보이면서 이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함을 증명하였다.

마크 제이콥스는 “새로운 것을 만들고 재창조하기 위해서는 파괴(destruction)시켜야 한다”는 해체주의적인 디자인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896년 창시자 루이비통의 아들 조르주 비통(Georges Vuitton)이 고안한 루이비통의 전통 문양인 ‘모노그램 캔버스(Monogram Canvas: 빅토리아 시대의 말기인 1896년 일본풍과 동양풍 디자인의 유행에 영향을 받아 다이아몬드, 별, 네 잎 장식의 꽃, LV 로고로 구성된 패턴)’라는 유서 깊은 주제를 새롭게 변형한 작품들을 선보이면서 루이비통에 혁신적인 이미지를 가져왔다.

첫 신호탄은 1998년에 발표한 ‘모노그램 베르니(Monogram Vernis: ‘베르니(Vernis)’는 ‘윤이 나는’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였다. 마크 제이콥스는 유리처럼 반짝거리는 모노그램을 상상하고, 반짝거리는 에나멜 가죽(patent leather)에 모노그램 패턴을 음각으로 새겨 넣었다. 음각의 모노그램 패턴이 두드러지지 않으면서 화려한 컬러의 에나멜 가죽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모노그램 베르니는 루이비통의 전통을 수호하면서 동시에 파괴한 마크 제이콥스의 미학이 잘 드러났다. 이후 여러 현대 미술가들과의 협업을 통해서 마크 제이콥스는 젊고 새로운 루이비통의 이미지를 구축해나갔다.

마크 제이콥스는 영화배우 샤를로뜨 갱스부르(Charlotte Gainsbourg, 1971~, 영화 배우 제인 버킨(Jane Birkin)의 딸이기도 함.)의 검은색 페인트로 칠해진 루이비통 가방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루이비통 가방 위에 페인트칠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2001년 봄/여름 루이비통 컬렉션에서 현대예술가 스티븐 스프라우스(Stephen Sprouse)와 함께 모노그램 캔버스 위에 형광빛의 페인트로 '루이비통(Louis Vuitton)'로고를 휘갈겨 쓴 ‘그래피티 모노그램(the Graffiti Monogram)’ 시리즈를 발표하였다. ‘그래피티 모노그램’은 전통의 모노그램 외관을 훼손하는 무례를 저지른 것처럼 보였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20, 30대의 젊은 부유층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루이비통을 패셔너블한 명품브랜드로 자리잡게 하였다.

마크 제이콥스의 모노그램 변형하기 작업 중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컬렉션들은 “아시아의 앤디 워홀”이라고 불리우는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 Murakami Takashi, 1962~ )와 진행한 작업이었다. 마크 제이콥스는 2003년 봄/여름 루이비통 컬렉션에서 어두운 브라운 톤의 ‘모노그램 캔버스’가 아니라 검은색 바탕 혹은 하얀색 바탕에 36개의 캔디 컬러의 네잎 장식의 꽃, LV로고, 별, 다이아몬드가 가득한 ‘멀티 컬러 모노그램(Multicolor Monogram)’과 미소 짓는 벚꽃 프린트의 ‘체리 블로섬 모노그램(Cherry Blossom Monogram)’을 발표하였다. 2005년 봄/여름 컬렉션에는 미소짓는 체리가 프린트되어 있는 ‘체리 모노그램(Cherry Monogram)’을 런칭하였다. 마크 제이콥스는 “나는 이 모든 것들이 재미있기를 원했다.”고 밝혔는데, 만화 캐릭터와 같은 벚꽃과 체리 문양, 밝고 경쾌한 컬러들은 전통있는 명품 브랜드에 유희성을 첨가하고자 한 그의 의도를 잘 반영하고 있다. 진지한 럭셔리 시장에 등장한 애교가 넘치는 핸드백들은 3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고, 여성 패션 시장에서 핸드백이 옷보다 더욱 주목받게 되는 ‘핸드백 신드롬’을 가져왔다.

2008년 봄/여름 컬렉션에서는 현대미술 작가 리차드 프린스(Richard Prince)의 ‘농담 시리즈(Nurse Painting Jokes)’의 모노그램 버전인 ‘모노그램 조크(the Monogram Jokes)’ 핸드백 라인을 발표하였다. 리차드 프린스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간호사들이 모노그램 위에 시와 써있고 스프레이가 뿌려진 핸드백들을 들고 등장하였다. 2012년 7월에는 일본의 전위적인 예술가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 Kusama yayoi, 1929~ )와의 협업을 통해 쿠사마 야요이 특유의 물방울 무늬가 가득한 컬렉션을 일부 런칭했으며 가을에 추가로 선보일 예정이다.

이와 같이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통한 모노그램의 변형은 1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루이비통의 보수적인 이미지에 신선함과 아방가르드한 감각을 더했으며, 핸드백을 하나의 패션 아이템이 아니라 예술 작품으로 승격시켰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또한 일반 대중에게는 현대 예술을 알리고, 같이 협업한 작가들에게는 재정적 지원을 통해 안정적인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루이비통의 매출이 그의 영입 전보다 무려 4배나 올라 마크 제이콥스를 패션계의 마이더스 손으로 떠오르게 하였다.

솔직한 차용주의자; 복고적인 요소들의 혼합, 팀워크

마크 제이콥스의 작품들은 전혀 새로운 실루엣과 형태를 가지고 있기보다는 어디서 본 듯한, 친숙하고 노스탤지어적인 느낌을 준다. 따라서 마크 제이콥스는 창의적인 디자이너라기보다는 영리한 표절자에 불과하다는 논란이 따라다닌다. 이런 논란은 미국의 원로 디자이너 오스카 드 라 렌타(Oscar de la Renta)가 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1967년에 발표한 것과 똑같은 코트를 마크 제이콥스의 쇼에서 봤다”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하면서 더욱 불거지기도 했다. 마크 제이콥스는 본인 스스로가 디자인 작업을 위해 참조(reference)와 차용(appropriation)을 즐긴다고 밝히고 있는 몇 안되는 솔직한 차용주의자이다. 그는 오래된 잡지들 속의 사진들, 빈티지 샵에서 얻은 중고 의류와 액세사리, 빈티지 원단 샘플, 예술과 대중 문화의 다양한 분야에서 얻은 시각적 자료, 현대의 거리 패션들을 자료로 삼아 루이비통 컬렉션과 마크 제이콥스 컬렉션에서 새로운 디자인들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기존의 것들을 해체하고 새로 조합하는 과정에서 젊음, 위트라는 특유의 미학을 더해 창조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마크 제이콥스는 특히 빈티지 의류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데,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레트로 패션과 현대 거리 패션의 시크함을 가미해 현대적이면서 복고적인 향수를 일으키는 미묘한 느낌의 옷들로 편안함을 선사하고 있다. 그의 옷들은 전혀 본 적인 없는 지나치게 혁신적인 디자인과 실루엣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편히 입을 수 있고 멋이 나는 디자인이다. 복고적인 요소들의 혼합은 다음과 같이 나타나는데, 1920년대의 라메(lam?: 금실(은실)로 짠 직물) 셔츠와 1960년대의 촌스러운 꽃무늬 드레스는 은근한 멋의 꽃무늬 라메 원단으로 재탄생되기도 하며, 중고샵에서 산 보라색 아크릴 스웨터는 다소 복잡한 디자인의 보라색 캐시미어 스웨터로 탈바꿈되기도 한다. 마크 제이콥스는 특히 10대를 보낸 1970, 80년대를 좋아해 자주 차용하고 있는데, 뉴욕 다운타운 거리의 대중문화에서 받은 영감을 가지고 실크, 캐시미어와 같은 고급 소재를 이용하여 럭셔리하면서 편안하고 멋진 옷을 창조하고 있다.

마크 제이콥스와 그의 사업 파트너 로버트 더피는 “상류층의 화려함과 캐주얼 웨어의 중간”의 빈 니치마켓(niche market: 틈새시장)에 주목하였다. 그들은 남을 위해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즐겁기 위해서 입는 젊은이들을 위해 위트가 넘치는 독특한 믹스 앤 매치의 의상들을 발표하였다. 아름다운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로 패션쇼에서 토끼 모양의 머리 장식, 회전 목마 등이 등장하기도 하고, 물방울 무늬 같은 다소 촌스러운 무늬들과 수많은 컬러들이 한 옷에 믹스되어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는 벼룩 시장, 리사이클링, 반패션(anti-fashion) 정신의 아방가르드한 감성을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스타일로 표현하였다. 그는 또한 자신의 예술성에만 빠진 자아도취적 디자이너들과 달리 “무엇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는지가 무슨 소용인가? 아이디어는 그냥 무엇이 되는 촉매일 뿐이다. 한 소녀가 입고 싶어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라며 고객의 입장에서 그들이 입고 싶어하는, 재미있고 입기 쉬운 옷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마크 제이콥스는 1984년 뉴욕 패션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이후 대중문화, 중고 의류, 뉴욕 다운 타운 스타일을 잘 녹아낸 독특한 칼라감, 젊음의 에너지, 위트가 넘치는 재기발랄한 디자인으로 현대 패션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각광받고 있다. 뉴욕의 부유한 상류층 출신이면서 동시에 보헤미안적인 감성의 소유자인 마크 제이콥스는 벼룩 시장, 반 패션 정신의 아방가르드한 감성을 캐시미어, 아름다운 실크 원단, 모피와 같은 고급 소재와 믹스하여 ‘저속하면서 럭셔리하고, 전위적이면서 얌전한, 다운타운의 에너지와 업타운의 세련미’를 혼합한 독특한 스타일을 완성하였다. 마크 제이콥스는 1997년 프랑스 전통 명품 브랜드인 루이비통에 합류한 이래 기록적인 매출 증가를 가져왔으며, 동명의 브랜드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와 세컨드 라인인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Marc by Marc Jacobs), 2007년에 런칭한 아동복 리틀 마크 제이콥스(little Marc Jacobs)까지 모두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마크 제이콥스는 미국 패션 디자이너협회(CFDA)에서 올해의 여성복 디자이너(Womenswear Designer of the Year 1992, 1997, 2010) 3차례, 올해의 액세서리 디자이너(Accessory Designer of the Year 1999, 2003, 2005) 3차례, 올해의 남성복 디자이너(Menswear Designer of the Year 2002)에 1차례 선정됨으로써 여성복, 남성복, 액세서리 모든 분야를 석권하였다. 2011년에는 제프리 빈 공로상(Geoffrey Beene Lifetime Achievement Award)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제2의 고향인 프랑스에서 2010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학과 예술상(Cheval?ier de l' Ordre des Arts et des Lettres)를 수여받았다.

마크 제이콥스는 대중적으로 인기를 누리는 몇 안되는 스타 디자이너의 하나이다. 뉴욕 웨스트빌리지의 마크 제이콥스 매장은 관광객들의 명소가 되었고, 마크 제이콥스의 패션쇼와 마크 제이콥스가 개최하는 연말 가장무도회 파티(Marc Jacobs' annual holiday costume party)는 전세계의 많은 스타들과 예술계의 명사들이 모이는 뉴욕의 가장 중요한 사교행사로 자리잡았다. 2006년 운동과 체중 감량으로 근육질의 몸매로 변신한 그는 문신이 가득한 누드 사진을 공개하기도 하였고, 여러 동성 애인들과의 화려한 연애사는 파파라치들에 의해 연예 가십란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2011년 마크 제이콥스는 인기 만화 사우스 파크(South Park)에 근육맨 마크(Muscle man Marc) 캐릭터로 출연하기도 했는데, 이 캐릭터는 그의 오른팔에 문신으로 새겨져있다.

대중문화, 음악, 패션,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영감을 얻어, 유럽의 세련미에 미국의 열정과 활기를 더하고, 뉴욕의 업타운과 다운타운을 혼합한 작품으로 마크 제이콥스는 “여자들이 입고 싶어하는 여성스러우면서 동시에 전위적인 옷을 만드는 몇 안되는 디자이너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으며 또한 가장 많이 복제되는 현대 패션을 이끄는 디자이너이다. 미국의 소설가 프랜신 프로즈(Francine Prose, 1947~ )는 “모두가 마크 제이콥스에게 홀린 것 같다. 뭐든지 마크 제이콥스와 연관이 되면 갑자기 인기를 끈다.”며 마크 제이콥스 신드롬을 설명하였다. 그가 심장 위, 왼쪽 가슴에 새긴 문신 “Shameless”처럼 마크 제이콥스의 디자인 여정과 인생의 여정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대담하고 열정적으로 계속되기를 기대해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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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선 / 건국대, 동덕여대 강사 서울대학교 의류학과를 졸업 후, ㈜쌈지, 지오다노 코리아에서 디자이너와 바이어로 근무하였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Academy of Art University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뉴욕 Republic Clothing Group에서 스웨터 디자이너로 일했다. 서울대학교 의류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현재는 복식사와 패션 디자인 등을 강의하고 있다.

이미지 TOPIC/Corbis, www.firstvie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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