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경 (미술이론)손끝 풍경(Fingertip-scape)김남표의 초기작품(1990년대 중후반~ )에서부터 캔버스에 여러 가지 재료를 ‘붙이는’ 형태의 모습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쇠 조각을 캔버스에 붙일 때도 있고 때로는 캔버스 자체를 셰이프드 캔버스(shaped canvas)로 변형시키기도 한다. 미완성작이라고 여겨질 정도의 흰 여백이나 작품의 맥락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질적인 물질들을 오브제로서 캔버스에 부착하는 것은 회화의 본질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한 작가의 질문이라고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이러한 작가의 태도
본질은 잔재에 있다.유진상(계원예술대학교)장승택은 지난 30여 년의 작업을 통해 자신의 회화를 일관되게 하나의 논제로 이끌어왔다. 그것은 사각형의 평면이 허용하는 예외적이고 독자적인 물성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유화와 캔버스를 벗어나 플렉시글라스와 산업적 도료를 사용한 것은 그가 선택한 급진적이고 명확한 방향성과 태도를 보여준다. 이 새로운 소재들로 인해 그의 평면작업은 쉽게 분류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영역으로 들어섰으며, 더욱 더 미니멀하고 즉각적인 면(面)으로 작품의 물성을 수렴시킴으로써 회화적 대상의 존재감을 심화하였다.그의 작
송희경(미술사가, 이화여자대학교 초빙교수)늘 새로움을 창조하는 한국화가, 원문자 남다른 실험과 독특한 조형성이 무르녹아 있는 작품을 살펴보는 것만큼 즐거운 시간은 없을 것이다. 작가의 보이지 않는 노력과 풍부한 예술성이 오롯이 목격되기 때문이다. 원문자(元文子, 1944-)의 작품을 감상할 때도 항상 그러하다. 원문자는 언제나 남이 가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 온 한국화가다. 이번 개인전에서도 기존의 어떤 작가도 시도한 바 없는 예술의 신 영역을 이룩하였다. 바로 포토 아트(Photo Art) 기법을 토대로 한
화폭에 빗질하는 간절한 순간들-이계련의 ‘Serendipity’ 시리즈김종근 (미술평론가)구체적인 의미와 형상을 보여주지 않는 추상미술이 어떻게 출발하고, 또 그것이 어떤 은밀한 가치를 가지는 것인가는 모든 사람들의 큰 관심거리이었다.뜨거운 추상미술의 대표적인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 (Wassily Kandinsky) 가 20세기 추상미술의 혁명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겪었던 세 가지 경험에서 출발한다.하나는 1895년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인상파 전시 때 끌로드 모네(Claude Monet) 의 ‘건초 더미’를 보고 빛에 따라
정형화된 캔버스 회화에 천착해 왔던 작가 김영구는 이번 전시에서 새로운 방식의 회화적 설치를 감행한다. 유기적인 형상의 ‘변형 캔버스(Shaped canvas)’를 수고스러운 노동을 통해 제작하고, 그 위에 정밀한 재현 언어로 도시와 섬을 표현한 후 전시장에 가변적으로 설치하는 방식의 전시가 그것이다. 이차원 평면성이라는 회화의 매체적 한계를 극대화한 이러한 방식의 설치는 마치 무대 장치의 가설 회화처럼 공간 전체를 점유하면서 거대한 ‘공간 풍경’을 구축한다. 즉 이러한 방식의 회화 전시는 캔버스 프레임 내부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김유진 미술평론욕망과 희망 사이의 변주화려하다, 밝다, 예쁘다, 눈이 부시다, 반짝거린다.김지희 작가의 작품을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첫 번째 인상이다. 하지만 화려하게 치장된 배경과는 다소 상반된, 작품 속 인물이 착용한 커다란 선글라스 앞에서 시선이 차단된다. 가려진 눈을 볼 수 없는 탓일까. 첫 번째 인상과 달리 알 수 없는 불편함이 밀려온다. 계속해서 작품을 들여다보면 화려함의 상징인 각종 보석들과 장신구 사이에서 그와 상반되는 도상들이 발견된다. 이를테면 전쟁의 이미지 같은 인간의 또 다른 욕망을 상
안 영 길(철학박사, 동양미학)조물주의 가장 위대한 창조물인 꽃은 생명 에너지가 온 누리에 향기롭게 울려 퍼지는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과 영혼의 교향악이다. 에덴동산에 활짝 핀 꽃들의 축제에 순수한 영혼의 향기를 연주하는 선율을 따라 벌 나비가 함께 춤추는 어울림의 몸짓은 작가 김명옥의 마음의 거울이다. 바로 이곳에서 우리가 소망하는 유토피아, 즉 장자(莊子)가 말하는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인 하나의 이상향이 열리기 때문이다. 매혹의 향기로 서로를 감싸 안으며 소통하고 어울리는 상생의 몸짓이야말로 순수하고 따뜻한 영혼과 감
1 신화(myth)는 세계를 해설해주는 오래된 도구이자 인간이 어떻게 세계를 보는 가에 대한 다양한 방법들의 모음이다. 세계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어떻게 움직는지, 인간이란 그 안에서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일러주고 설명해주는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는 인간에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감소 시키고, 세계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가져다 주는 수단이었다. 신화는 종교와 과학과 다른 모든 학문, 혹은 인간이 하는 일들과 마찬가지로 세계 내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다.그림도 마찬가지다, 그림 역시 말하기의 한
[신항섭 미술평론] 조형적인 요소 가운데 점과 선과 면은 회화의 출발점이자 완결점이다. 이 세 가지 요소를 장악하면 구태여 색채를 덧붙이지 않더라도 능히 아름다운 조형세계를 펼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는 이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점과 선과 면에 대한 이해 및 숙지는 그림의 기초일 뿐이라며 일축한다. 과연 그럴까. 문화의 흐름이 동진하고 있는 이 시점이야말로 수묵을 매개로 하는 선의 미학이 각광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이종목은 이 세 가지 조형적인 요소를 근간으로 하여 필묵의 현대적인 변용을 모색한다.
[김광명 미술평론] 작가 이종목의 예술세계에 대해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평자의 생각엔 그는 시공간의 동양적 조형화를 통해 줄곧 자기 정체성을 모색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전통적인 한국화의 소재와 구성에 대한 여러 실험을 통해 필(筆)과 묵(墨)의 다양한 변주의 가능성을 꾀하고 있다. 평론가 신항섭은 이종목에게서 점, 선, 면을 중심으로 필묵의 현대적 변용을 모색하는 것으로 보며, 순수한 선의 다채로운 조형미를 추구한 것으로 본다.그간에 수묵담채를 토대로 생동하는 한국적인 미감을 동양적 세계관에 기대어 천착하면서 전통과 근대에
이란 타이틀을 보고 적잖이 당황하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무위 혹은 무위자연이라는 제목의 무게도 그렇고 작가가 고민하는 의식의 지점이 진지하고 모순적이어서 우선은 그것을 뚫고 나갈 필요성을 느꼈다. 작가의 말은 다음과 같다.“작업은..... 자기 성찰의 과정이기도 하며, 자기실현의 방도입니다. 완전하지 않은 언어와 경험된 감각, 통제된 인식체계의 의식의 테두리를 벗어버림으로써 새로운 풍경을 마주할 수 있고 조우할 수 있는 개개인의 특별하고도 고유한 체험, 또 그 체험마저도 관조함으로써 비로소 나름의 방식과
[심은록 미술평론] ‘결 Gyeol’의 화가 한홍수는 1992년 도불, 독일 신표현주의의 거장, A. R. 펭크(A. R. Penck)의 수업을 듣기 위해 2년 반 동안(1996-98), 파리에서 쿤스트 아카데미(뒤셀도르프)까지 12시간의 왕복을 기꺼이 했다. 펭크는 그에게 미술의 자유로운 정신과 내면 깊은 곳을 분출할 수 있는 정신을 승계했다. 이후, 한홍수는 프랑스를 거점으로 유럽, 한국, 미국(뉴욕, 워싱턴 D.C.), 등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유네스코 70주년 기념전 (파리 유네스코 본부, 2015), 2
풍경을 그릴 때는 눈으로 보지 말고, 상상력과 마음의 눈으로 본 풍경을 그리라고 처음 가르친 화가는 구스타프 모로였다.그리고 그 원칙을 가장 충실하게 따른 그리하여 마침내 화가로서 성공한 작가가 바로 야수파의 앙리 마티스였다.흔한 풍경과 인물에 자유롭게 색채를 쓸 수 있었던 금세기 색채의 거장 앙리 마티스를 있게 한 비결이었다.적어도 창조적인 화가라면, 그림을 그릴 때는 보이는 그대로 그리지 말고 독창적인 시각과 자신만의 화풍으로 그리라는 주문이다.허혜영 작업을 보면 일순간에 이러한 마티스의 그림을 보듯 그만의 화법에 독특함을 발견
정병모 경주대학교 교수최순금은 민화공모전에서 큰 상을 휩쓸어 주목을 받는 민화작가다. 2014년 한국민화협회 민화공모전 대상, 2015년 김삿갓문화제 최우수상, 2020년 전승공예대전 장려상 등 큰 공모전에서 3관왕을 거머쥐었다. 도대체 그 비결이 무엇일까?공교롭게도 수상작 3점이 책거리다. 그것도 창작민화가 아니라 전통민화다. 그의 행적은 전통민화의 길을 걷는 작가들에게 여러 시사점을 준다. 내용은 전통 그대로이지만, 형식은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첫 수상작인 민화공모전 대상의 작품은 삼성미술 리움 소장 책거리를 형식만 바꿨다. 가
“그림은 색채로 뒤덮인 하나의 평면이다.”라고 정의한 사람은 프랑스의 화가 모리스 드니이다.그러나 이 말은 이렇게 수정되어야 한다. “그림은 색채와 그리고 영혼으로 뒤덮인 하나의 평면이다”라고. 90년대 프랑스 체류 시절부터 보아온 이창분 작가의 작품이 이렇게 가슴 저미게 화폭 속에서 작가의 영혼이 읽히는 것은 드문 일이다.작품 앞에서 내가 제일 먼저 받은 강렬한 첫인상은 “아, 지금 이 작가는 마음속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았구나 ”그리고 이제 “철이 들었다”는 느낌이 그림에 드러나는 무욕의 비어있음과 순수함에서 부닥치듯 발견되었다.
처음 인간들이 사용한 언어는 소통을 위한 일종의 기호였다. 초기 그 기호는 점진적으로 그림의 형태를 닮았고 그것은 후에 그림을 닮은 상형문자로 되어 오늘에 이르러 우리가 쓰는 문자가 되었다.금보성 작품의 출발은 여기서 시작한다. 그 한글을 모티브로 형태가 만들어지고 글자의 구성이 등장하게 된다.궁극적으로 금보성작가의 조형세계의 컨셉트는 그림의 기호화 , 즉 문자로서의 예술이다.하나같이 그를 일컬어 ‘한글 작가’라는 별며이 그의 작품을 단적으로 가장 잘 상징적으로 말해준다.자음과 모음으로 만들어진 문자에는 기본적으로 기하학적 형태가
1989년 한국의 그림을 세계에 알리고 싶어 파리로 이주한 권순철. 그가 그릴 줄 아는 것은 거친 산과 주름진 사람들의 얼굴뿐. 그래서 프랑스에선 권순철 그를 한국의 세잔이라고 불렀다.한국의 거칠고 투박한 산에 뼈와 골격, 그 끈질긴 힘을 한결같이 집요하게 끊임없이 풀어냈다. 그만의 업버과 필치로. 마치 꽃이 핀 한라산은 부드럽고, 세잔의 산처럼 입체적이고 독창적이었다.백두산은 바위가 억세었고, 영혼의 물은 침묵했지만 차고 흘러 넘치는 듯했다. 70대 중반이 넘은 권순철 화백은 이제서야 인간으로서 여자, 그리고 사람으로서 여체인 누
1, 오색(五色)의 향연 그 영혼의 빛깔 이영희 작가는 한국 전통의 색과 기법으로 우주, 대지, 산, 물과 같은 동양적 철학이 투영된 화면을 구현해 오고 있다. 작가는 삼합지와 오배자, 콩즙물과 같은 자연의 소재에서 추출해낸 재료들을 사용함으로써 전통의 물성(物性)이 그려내는 세계에 주목한다. 세계가 움직이는 중요한 원리로 인식한 음양오행론에 기초한 흑, 백, 적, 청, 황의 오방색(五方色)은 화면의 중요한 운용 도구로 사용된다. 이러한 전통색의 기본이 되는 오정색(五正色)과 오간색(五間色)의 향연으로 이루어지는 작품들은 콜라주 기
[아트코리아방송 = 김미영 기자] 석태린의 정물화함박꽃으로 장식한 우미한 이미지의 정물화꽃 중의 꽃은 흔히 장미라고 하는데 이는 서양적인 시각이다. 이와 달리 동양에서는 모란을 으뜸으로 친다. 모란은 부귀영화를 상징하여 예로부터 궁중이나 사대부들이 즐기던 꽃이었다. 이와 비슷한 모양으로는 작약, 즉 함박꽃이 있다. 함박꽃은 모란의 크기에 버금할 정도로 크고 수려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꽃 모양으로만 보자면 모란보다 더 화려할 지경이다. 그런데 꽃말은 화려한 외형과는 달리 수줍음이다. 왜 이런 꽃말이 붙여졌는지는 모르겠으나 혹여 단
"물확. 울퉁불퉁 못생긴 돌 속에 참 많은 것들이 보인다. 물, 돌멩이, 꽃, 구름, 하늘.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이 다 담겨 있다. 정서가 메말라가는 현대 사회에서 가만히 그 안을 들여다보면 싱그러운 감성의 물결이 내 마음을 촉촉이 적셔 준다. 작업을 통해 물확의 본질을 형상화하고 그 속에 따뜻한 생명을 불어넣고 싶었다."심민영 작가가 밝힌 이 작가 노트는 그녀가 물확을 그리는 이유를 진솔하게, 그리고 심경 표현을 따뜻하게 적고 있다. 마치 세기의 ‘색채의 시인’,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가 “내가 진정 보여주고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