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성과 한양도성 우리는 1979년 북한산성을 복원하고자 할 때는 애국심의 씨앗을 품었습니다.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씨앗에 불과 하였습니다. 식민지, 6.25를 통하여 무참히 짓밟힌 북한산성은 경복궁에 중앙청의 모습처럼 염치마저 없었습니다. 능멸 그 자체였습니다. 또한 근, 현대화의 파고는 우리의 것을 우리 스스로 부정하는 높은 벽을 쌓았습니다. 봉건잔재의 버려져야할 옛 물건 따위로 방치하였습니다. 애국심은 이처럼 최소한의 몸부림을 실천하려는 본능 같은 것이었을 것입니다. 경복궁 복원차원에서 중앙청이 철거됩니다. 그때만 해도 50
벗이여, 순명의 길을 맞이하다. 40여 년 전 북한산성복원운동에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은 그냥 좋아서였다. 어찌 보면 문화유산이라는 명제를 몰랐을지언정 그저 하고 싶어서 한 취미 같은 세계였다. 그러니까 79년부터 시작하여 복원발표 때까지 십 여 년의 긴 여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집요한 신념을 갖고 진행하였는지는 오늘날까지도 의문이다. 다만 697차라는 긴 여정 속에 잘못하면 북한산성 숙제 속에서 전 인생을 잃어버릴 듯한 중압감이 몰려왔다. 그때 택한 방법이 북한산성 복원 제안서 아이디어였다. 지금도 아련한 뒷얘기지만 타이프
벗에게 그대는 이미 알고 있겠지만.벗이여, 그대는 이미 알고 있겠지만 오늘 서울의 무더위는 떠나가고 말았네. 백년만의 무더위도 두려움마저 들더니 오히려 무기력하게 뒷걸음치더군. 가을 정령 앞에 무릎을 정중히 꿇었단 말이지. 섭리처럼 사계의 명령어에는 잦아들고 말지. 벗이여,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은 그 뜨거웠던 무더위도 섭리 앞에 복종하거늘 우리내 정신 결은 언제쯤 섭리를 받아들일지! 침통함은 가실 기미가 없네!벗은, 나의 침통함을 알고 있겠지. 문화의 정수는 그저 잦아드는 가을 태풍처럼 요란하지도 섭리를 강요하지도 않지만 오는 길
70년 만에 세상에 나온 독립운동가 애국가 5절의 이야기는 그 자체가 보물이다. 6.25때 머리 총상을 입어 총명한 성품이 병마로 시달리면서도 아버님과의 약속을 지킨 아름다운 이야기는 결코 가벼이 볼일이 아니다. 박성현-양승자 부부의 나라사랑, 가족사랑이야기가 배뱅이굿 전수자 박성현의 태극아리랑과 만나 쇼를 선보였다. 우연의 일치인지 필연적 운명인지 알 수 없지만 배뱅이굿의 박성현과 애국가 5절의 박성현은 동명2인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예스평창 축제에서 이루어졌다. 예스평창 다큐 제작-평창 코리아서포터즈 프로그램을 함께 하며 쇼
3오만대사관-호텔신라스테이-경희궁성곽돌담-삼봉 정도전 터 유구에서 시작된 Remember의 명제는 Remember, Memory, Creative 개념으로 집을 짓게 된다. 비닐하우스, 궁의 박석, 글로벌 한글2111, 애국가5절, 예스평창 다큐의 이야기는 하나의 궤적에서 만나고 있다. 두산위브 918호, 만원벽화 퍼포먼스의 작품이다. 꿈이 이루어지는 엔젤의 스토리다. 수도서울의 자랑거리의 하나인 궁의 수문장교대식은 용역 전문 업체가 운영하는 아르바이트 퍼포먼스다. 알바용, 용역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음이다. 버킹검, 바티칸, 베르사
2전통문화 제1거리 인사동에 나무전봇대가 있다. 참으로 멋진 볼거리이자 체온이다. 칠팔 년전 우연히 발견한 인사동 나무전봇대의 존재는, 동, 서, 남, 북 나무전봇대가 존재할 만한 곳을 쫒아 답사를 거듭하게 되었다. 북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 자락마다 나무전봇대를 발견했다. 또한 재래시장 골목마다 나무전봇대를 발견하게 된다. 마치 인사동 골목에서 마주한 것처럼 성성한 역사의 퇴적층을 목도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 밟기 행로의 큰 산맥은 「신화」로 귀결되었다. 안타깝게도 수도서울의 개념은 마땅한 논문 부재의 지층을 내재하고 있다.
들어가는 말문화란 무엇인가! 우리 시대에 맞는 문화개념은 어떤 것일까, 라는 명제가 다시금 잦아들었다. 디지털혁명이 거세게 밀려오고 초, 분을 다투는 첨예한 문화경쟁 구도가 작동하는 오늘, 우리는 어떤 관점에서 개념을 정립하여야 할까. 라는 벅찬 주제의식의 정립이다. 60억 인류문명의 커뮤니티가 생성되고 작동되는 것은 그 어떠한 이념덩어리와는 비교할 수 없다. 종교, 이념의 카르텔 붕괴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경제 권력 카르텔의 와해 내지는 진화를 읽게 된다. 인류가 경험한 그 모든 축적의 틀 거리를 본질적으로 개혁해내는
문화의 서장 - 4「문화의 서장」은 이러한 충만함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반복했다. 박꽃의 넝쿨만큼이나 오묘하고 치열한 끈과 끈 사이의 팽팽함, 그러한 간극의 긴장감이 「창작」이라는 현장감을 유도했다. 「플랫폼」의 형상은 「문화공장」의 낱낱을 응변한다. 삼청동, 인사동, 충무로를 하나의 궤적으로 연결하는 실험은 그 자체가 현장성이다. 「방송은 체온이다.」 - 「여행은 미래다.」- 「아트가 부자다.」라는 명제 속에 갈고리처럼 동여 맨 과제를 읽어 내려는 것만으로도 숙제였다. 목가적인 테이블과 걸맞은 꽃병은 무엇이었을
산모퉁이 정도로 받아들이고 싶지만 인왕산 호랑이는 결코 산허리 품에서 벗어날 존재는 아니다. 범 또는 수호신 정도로 받아들였고 우리 조상님들의 얼결에는 그렇게 사유되었다. 산모퉁이, 인왕산 선바위자락, 인왕 호랑이벽화를 제작하며 나의 일기를 남기고 싶었다. 만화가 답이다, 문화가 답이다, ART가 부자다, 라는 전혀 사유와 맞지 않을 벽화 제호로 암호를 삼았다. 5,6년 전의 나의 행로다. 그러기에 40여 년 전 한지묶음 일기장을 묶고 나누어주던 순심의 발로를 쫓던 나에게는 덜컹 사금파리를 달아맨 일기장의 존재가 나의 일인 퍼포먼스
문화의 서장 - 2문화란 정수의 눈물로부터 꽃피는 계절이어야 마땅함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극히 목가적인 테이블과 온정어린 꽃병, 그리고 치열했던 청년시절의 명저 몇 권으로 족하다. 이슬비내린 봄과 여름 사이의 찬란한 일요일, 평일처럼 잦아드는 나른함과 허기짐이 교착 점에서 원고지가 탐스럽게 보이는 창작의 본능 앞에서 몇 자 적고 싶은 충동어림이 맞이하고픈 「문화의 서장」의 앞머리였다. 지극히 소소하며 일상적이지만 결코 배설의 나부랑이가 아닌 마음 밭의 향기로움으로부터 나의 조국, 나의 문화운동 서장의 깃발을 채우고자 했다. 그러기를
문화의 서장 - 1문화의 꽃은 무엇일까! 과연 어느 장르와 이미지에서 창연한 꽃망울을 터트리고야 말 것인가. 숱한 논객과 철학의 사유 밭에 정수란 존재하는 것일까. 미로처럼 삼엄한 개념의 세계 속에 돌연히 나타난 천재의 영혼 앞에 귀결되는 답일까. E=mc2 과 같은 아인슈타인 유형으로 귀결된다 해도 온 인류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오히려 와트의 전기혁명을 불러일으킨 에디슨의 사유 속에서도 「문화」라는 가치는 흥미롭고 아기자기한 비전은 설명되어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 다운 철학들이 인류마당에 텃밭을 일군 명령어는 오히려「
「문화」는 어쩌면 우리 민족의 업보이거나 숙제다. 독립운동, 평화운동, 민주화운동, 그보다 몇 곱절 어려운 난제다. 과연 그럴까. 15~6년 전, 어느 학자와의 대화였다. 40여 년 문화운동 길목에서 덫에 걸리고 좌절하던 심연의 세계에는 늘상 회귀하는 길목은 덧없다 이었다. 도무지 그 갈무리를 헤아릴 수 없는 답이 전체를 무너뜨리는 꼴이었다. 모두 경제개발, 사회개발, 정책시대에 길들여진, 우리 사회의 담론은 「문화」는 피상세계의 존재였다. 물론 모두다 문화에 대한 명제는 주요한비전임을 앵무새처럼 대답한다. 겉핥기다. 그럼에도 한류
예스평창-오케이평창-붉은 악마로 이어지는 다큐의 열정은 엔젤, 크라운드펀드의 첫발을 띠기에는 적확함이 있다. 한류열풍의 작은 씨앗을 품기에는 온당함이 있다. 이 자체가 우리의 역사를 오마쥬 하는 서사시다. 그러기에 에스평창 다큐의 흥행실패의 질곡을 딛고 일어서는 것은 당연했다. 40석의 의자, 대형스크린, 프로젝터 마련을 서두르며 작은 소망의 깃발 같은 것이 꿈틀거리게 되었다. 메리힐하우스아카데미의 원장, 부원장의 소제기는 역지사지로 이해하면 된다. 소상공인협동조합 프로그램을 통하여 관철시키는 신념이 요구된다. 여하튼 나의 실험처럼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대상은 오히려 하늘이었다. 뜬금없이 비가 내리고 세찬 바람이 불더니 꽃샘추위를 더했다. 물론 오랜만에 비둘기가 찾아와 구구거린다. 918호 나의 작업실, 배란다. 격의 창틀에서다. 인사동 경매 Auction 스케치는 벌써 30여 년 전의 목표였다. 일본식 진품명품의 업그레이드를 설계했다. 물론 소더비 경매를 「문화축제」로 읽는 나의 세계다. 「인사동보물」이라는 명제를 안고 토크Show를 시작하기까지 30 여 년의 여정이 공백을 메웠다. 심상치 않은 조짐이 분명해 보인다. 고서, 책 경매, 중국도자 경매를 직접
한 가지 질문과 한 가지의 답은 명쾌한 사유를 내재한다. 그러나 질문과 대답을 계속 한다면 내재율은 생명력이 식물 화되거나 광물화된다. 똑딱 똑딱 시계처럼 회전목마처럼 도식화된다. 사람의 삶은 이 도식을 뛰어넘는 그 무엇을 위하여 박동 친다. 심장 박동소리다. 니힐리즘의 등대 같았던 소팬 하우어의 사람의 내재성은 식물, 광물, 동물, 인간성에 대한 탐독의 편단이었다. 물론 융과 프로이드의 다층적 심상세계의 해부학은 우리 모두를 전자현미경 속의 콘텐츠 집합체에 불과하다는 검증방법을 역설하였어도, 한 생명에 대한 심연세계는 독자적이며,
인사동경매 Story와 커피 한 잔 인사동경매 Story는 인사동의 개념 텍스트다. 인사동 생명 얼개의 1/3이다. 갤러리, 골동, 전통을 연결하는 촉매제가 아닐까. 가을의 높바람이요 양떼구름의 신드롬처럼 인사동 골동컬렉션은 천상의 컬렉션만큼이나 존중받아야 할 이유가 있다. 쓰레기통인문학-인사동경매 Story와 박물관학교를 설계하고 있다. 국내 골동, 중국 골동, 서지 골동, 빈티지, 갈레를 프로그램으로 하는 인사동경매 Story는 40년의 내공을 담고 있다. 문화운동 현장에서 40여년의 풍파와 질곡, 아득함을 경험하였기에 박물관학
브랜드파워 1945과연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대한민국 브랜드파워가 무엇일까요! 삼성, 현대, LG, 포항제철, 그리고 숱한 명품스토리가 답을 기다리겠지요. 한류열풍과 그 에너지는 앞서 기술한 브랜드파워가 올바르게 흡수되고 뿌리와 열매, 꽃을 담아내고 있을까요. 화장품 브랜드파워는 무척이나 억척스럽게 약진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일 뿐입니다. made in Korea 가 made in China 보다 월등한 품질이며 소비자에게 명품으로 한걸음 다가선 것은 분명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망설임을 갖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브랜드
한강 스토리-5우이천, 중랑천은 청계천과 아우라지를 이룬다. 마치 양수리의 아우라지요 아라리를 합창하는 하모니즘이다. 뚝섬의 은빛 모래톱은 켜켜이, 층층이 아라리요다. 잠실과 뚝섬 사이의 경관은 강의 이야기이지만 수도 서울의 별빛과도 같은 이야기를, 테제처럼 보듬고 있다. 잠실, 뚝섬, 압구정, 마포, 여의도에 이르는 한강변 스토리는 왜곡되어 있다. 콘크리트 문화에 도색되었을 뿐, 겸재의 한강-금강산도첩의 정수를 읽지 못한다. 성장통의 신음소리처럼 읽기에는 너무나도 아스라한 주제다. 오히려 밤섬을 테제삼아 ‘환경 이념’으로 읽으려는
문화Story 오브제우리 대한민국Story는 명품이다. 결코 그리스 로마신화에 뒤지지 않음이다. 잘 꾸려진 중국, 일본, 대만의 동양문화권Story 관광 상품과 비교하여 우리의 아픔과 상처를 예술적 장르를 차용하여 승화한다면 한판 붙어 볼 만 하다. 한류의 거침없는 열정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단지 「연결」이라는 거대담론의 치료제가 없음을 40년 문화운동 현장에서 찾아냈다. 어둠은 결코 빛의 그림자보다 어둡지 않다, 라는 명제를 극복하는 문화공명법칙의 화두다. 작업, 답사, 실험은 계속되어 왔다. 이 케리커쳐의 영감은 사금파리,
메리힐하우스 아카데미, 9+1 전시기획- 메리힐하우스아카데미 오픈기념참으로 아담한 담론이 요구됐다. 몇 해 전 결심했던 바대로 동화책, 시집을 꾸리고 직면한 생의 복판에서 대답을 요구했다. 봉사와 에세이 또는 사금파리 문화일기장, 골목강좌와 문화유산에 대한 질문과 대답은 나무전봇대와 신화, 오래된 미래의 얼개로 좁혀지거나 정돈되었음이 분명했다. 몇 줄의 이야기가 40여년의 여정을 마침표처럼 정립할 수 있었다. 참으로 아담한 담론에 대한 사유다. 일 년여의 밑줄과 같은 갈증의 스케치를 해왔다. 여행학교, 미디어센터, 아트샵, 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