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열 갤러리스트 소장품 이야기 10 - 정상화한때 일본을 오가며 한국 작가의 작품을 보이면 보이는 데로 구입 해 온 적이 있었다. 지금 생존 작가 중 한국의 가장 비싼 작가 탑3에 계시는 정상화 선생님의 작품이, 한때 일본 화랑에서는 거의 휴지 값에 거래가 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시는 분은 그리 많지 않으실 것 같다. 나는 컬렉터로서 참 운이 좋았던 것이, 일본의 몇몇 경매 회사를 일찍 알았었다는 것이며, 단색화에 매력에 일찍 빠졌었다는 것이었다. 그렇더라도 비싼 작품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던 나로서는 가급적 가격이 싼 작품을 구
소장품 이야기 9 - 오경덕오경덕 작가는 지푸라기 화가로 알려졌었다. 작가는 유화의 질감에 빠져 두툼한 느낌의 그림을 마음껏 그리고 싶었고, 재료를 마음껏 쓸 만큼 사정이 그렇게 나아지지는 못했고,궁여지책으로 찾아낸 방법이 들판에 널린 지푸라기와 흙이었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선택한 방법이 진짜 지푸라기라고 했다. 캔버스 바탕에 지푸라기를 썰어서 깔고, 그 위에 유화 물감을 얇게 발라 두께 감을 주어 자연.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내거나, 백토. 황토. 흑토흙을 사용해 백인 종, 황인 종,
유태인 포로수용소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아 실존치료라는 심리치료이론을 창시한 빅터 프랭클 박사는 폭력과 죽음이 난무한 수용소에서 자신도 굶주리면서도, 더 힘든 동료에게 마지막 빵을 건네는 이를 보고 큰 영감을 받았다.“살아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는 말로 유명한 프랭클 박사는 우리의 삶에는 세 가지 가치가 있다고 제안하였다. 즉, 활동을 통해 실현되는 창조적 가치와 자연이나 예술의 아름다움에 몰입하는 경험적 가치, 그리고 태도적 가치가 그것이다.이 중에서도 태도적 가치란, 주어진 삶과 환경은 변화시
소장품 이야기 8 - 조영남그림이 투자 자산 이라고 한다면, 나로서는 가장 투자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작가가 조영남 선생이다. 조영남 선생은 연예인 활동을 해오신 분으로, 보통은 그림을 취미로 그린다고 생각하게 된다. 본인도 취미 활동 이라는 말을 자주 함으로서 취미 생활로 인정하는데 있어서 의견차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취미로 그린 그림이 이미 3,200점이고, 설치 조각을 합하면 대략 3500점에 넘는다는 점이다. 나는 한국의 현대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한국적 팝아트의 탄생에 대한 의문점이 누구보다 강하다, 그리
정회윤의 옻칠 회화 '사막에, 소금호수에, 버드나무에, 세상 끝에 서다' 고충환(Kho Chunghwan 미술평론)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현대인은 상실의 시대를 산다. 신을 상실하고, 중심을 상실하고, 유년을 상실하고, 고향을 상실하고, 원형을 상실하고, 자연을 상실하고, 자기를 상실한. 상실감이야말로 그가 다름 아닌 현대인임을 증명하는 징후며 증상인 시대를 살고 있다. 다만 그 경우와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상실감이야말로 현대인의 보편적인 세계감정이라고 해야 할까. 환경결정론자들은 시대 감정이 예술(그리고 예술형식)에 연동된다고
소장품 이야기 7- 이건용내 소장품 중 가장 이야기꺼리가 풍부한 것은 역시 이건용 선생님의 작품이 될 것이다.2008년 이건용 선생이 미국전시를 위해 한국을 떠나있게 되었고, 그때 경기도 백남준 미술관 오픈에 맞춰 전이 열리고 있었다.당시만 해도 이건용 선생은 자신의 이벤트적 행위에 더 많은 의미를 둘 때라, 신체적 한계에 대한 증명을 해 보이는 것에 더 집착했고 이러한 작업은 일회성 퍼포먼스로 진행되기 일쑤였다.선생은 백남준 아트센터에의 전시 역시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벽면과 바닥에 작업을 하셨다. 때문에 전시
소장품 이야기 7 - 황시(쓰마오)작가를 발굴하는 갤러리로서 한국 작가만 집중하기에는 세계 시장이 너무 컸다. 해외를 나가면 미래가 촉망되는 작가를 찾기 위해 나름 노력했고, 2010년 북경 아트페어에서 작가의 작품을 처음으로 대면하게 되었다. 작가의 작업은 중국의 특권층에 대한 비판과 자연에 대한 경고를 표현하고 있었고, 개념적 사고가 분명한 이미지는 세계 어디를 내어 놔도 너무나 독자적인 작업 방식이었기에, 작가의 미래에 대해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이듬해 작가를 만나서 계약을 맺고 1년에 40점씩 5년간 200점을 구매하기로
미국 대학원에서 나는 American Abstract Expressionism book 코스가 필수여서 학점 A 를 받기 위해 엄청 열심히 공부했다.그중에서 제일 인상 깊었든 코스가 Minimalism이다.Newman( 1905-1970) – American Abstract Expressionism Artist !최소한도의 극취, 기교나 각색을 최소화하는 예술과 철학!또한 거의 Color Field 속에 최소한의 극치를 나타낸 작품이다.너무 인상 깊었으며, 그 당시는 내 나름대로의 Minimalism을 나타내보려고도 노력했었다. 대
소장품 이야기5 – 한만영한국의 팝아트 선구자에 대한 자료를 찾던 중, 몇 가지 일화를 접하게 되었다.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선생님 초기 작업이 팝아트 적 경향을 띄고 있었다는 사실이나, 또 자신은 팝아트라고 주장을 하는데 남들이 팝아트가 아니라고 하는 조영남 선생님이나, 남들이 팝아트로 보는 것에 대해 스스로 팝아트가 아니라고 부인해 버린 한만영 선생님의 경우가 그랬다. 내가 한만영 선생님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한국의 팝아트 선구자를 찾아보는 과정에서 발견한 이름이었다. 한만영 선생님의 작품은 명화를 패러디 하거나, 실생활의 오브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 화가 마르크 샤갈은 색채의 마술사와 색채의 시인으로 불린다. 그런 샤갈이 평생 그린 화폭의 주제는 고향, 사랑, 그리고 성서이었다. 환상적인 색채와 상상력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샤갈은 고향 비테프스크에 대한 그리움과 아내 벨라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인생의 황혼기에 성서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그리면서 더욱 사랑을 많이 받았다.그 그림들은 모두가 삶의 구원과 인류의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성서의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샤갈은 고개를 숙이며 “나에게 성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위대한
그림자를 통한 새로운 시선예술가는 이런 존재가 아닐까? 화가들은 매일 매일 그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많은 생각과 감정들을 자신의 예술적 안테나로 높게 달아 놓아 수신한다. 그리하여 안테나에 걸려든 이미지들을 채집하여 화폭 위에 모아놓는 “여러 사물의 수신기”는 아닐까? 모든 예술가는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여러 감각과 메시지들을 자기가 명령하는 대로 창조해 내는 숙명적인 존재이다. 김정선은 이러한 측면에서 매일 서로 다른 주파수의 안테나를 세워놓고 끊임없이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는 전형적 부류에 속한다. 그의 블루 그림자를 기억하는 사람
소장품 이야기4 – 윤진섭'다매체 예술가 윤진섭' 내가 선생을 통칭하는 이름이다.윤진섭 선생님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2007년부터였다.이건용 선생님은 과거를 회상하시면서 윤진섭 선생님에 대한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그래서 나는 윤진섭 선생님이 이건용 선생님과 동년배 정도로 알고 있었다.내가 아는 윤진섭 선생님은 평론가였다.그리고 전시기획자셨다.그런데 이건용 선생님의 입을 통해 듣던 그 이름은 사뭇 달랐다. ST그룹 핵심 멤버로 선생의 젊은 시절 기억 한 부분에 분명히 자리 잡은 윤진섭 선생님은 이건용 선생님의 훌
챗GPT 경영 활용법2또 하나의 패러다임 변화사람처럼 생각하는 챗GPT는 기회일까? 위기일까?사람과 같이 당돌하게 생각하는 챗GPT로 인해 ”이것이 기회다 또는 위기다“ 등으로 갑론을박이 뜨겁다. 아마도 AI가 사람처럼 생각하고 대화 형태로 답변을 해주다 보니 만물의 영장인 인간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을 것같다. 스마트폰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를 생각해보자. 그때도 역시 우리나라 3대 통신사들과 휴대폰 제조업체들을 비롯한 여러 환경들 속에서 많은 갑론을박이 있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로 어떻게 PC와 카메라를 대체할 수 있을까?
소장품 이야기 3 - 권기자 편2010년 문득 '후기파'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나는 2006년부터 독학으로 한국미술사 공부와 국제미술시장 연구에 여념이 없었다.그러면서 한국의 단색조와 전위예술에 대한 기대감에 온통 머리 속은 미래 구상에 들떠 있었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면 한국의 독자적 모노크롬과, 아방가로드 예술이 국제무대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음을 입에 거품을 물어가며 이야기했고, 지방의 변두리에서 미술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을 두고 이해를 시켜보려 옥신각신 했었으니 참 기가 찰 노릇이었다. 내가 그렇게
나는 단색화에 대해서 남보다 조금 일찍 빠져 들었던것 같다. 그 이유가 아마 내가 문인화를 좋아한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을까 싶다.내가 단색화에 매달린 것은 2006년경으로 생각되는데 이때만 해도 전문 컬렉터가 아니면 단색화를 도외시 할 때였다. 나는 원래 동양화 수집을 주로 했으나 서양화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03년 즈음으로 기억된다. 이때만 해도 수집이라기보다는 누가 권하면 마지못해 한점씩 사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어디를 가면 그림 이야기하기를 좋아했고 한번은 공사 현장에서 잡담을 나누다가 김 사장이 여기에 갤러리를
강찬모 선생님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독일에서였다.첫 느낌에서 한국작가 일 것이라는 예견은 역시 빗나가지 않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일본스럽다는 생각도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작가는 중앙대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교에서 채색화를 전공하였고, 츠쿠바 대학교 대학원에서 학예연구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내가 처음에 느꼈던 감정이 틀리지 않았음과 강찬모 화백의 작품이 그동안 한국에서 보지 못한 독자적인 특별함을 지녔음을 더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이후 국내외 아트페어와 갤러리의 기획전 등에 몇 번의 초대로 선생님 작품
김수열 ‘소장품 이야기’를 시작하며얼마 전 김한정 회장님의 연락을 받고 깜짝 놀랐다. 내가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는 소장품 이야기를 그대로 기사로 올려 달라는 말씀이셨다. 워낙 두서없는 글이고 또 보잘것없는 소장품 자랑을 깊은 관심으로 지켜봐 주셨으니 감사함을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미술인들에게 인지도 높은 아트코리아방송에 내 글이 기사로 다루는데 따른 부담감은 너무나 크고 또 두려웠다. 나의 관종심리로 시작된 글이 독자들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차일피일 미루다, 몇 번의 권유를 받고 오늘 이렇듯 첫 글을 쓰게 되었다.
쿠사마 야요이는 원래 예술가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단지 그녀에게 보이는 환각들을, 그림으로 옮겨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엄격한 어머니로부터 사랑보다는 학대를 받으며 골방에 파묻혀 그림만 그리던 그녀는, 열 살 무렵 식탁보의 빨간 꽃무늬가 사방으로 번지면서 붉은 점으로 뒤덮이는 환각을 경험하게 된다. 이 꽃무늬는 둥근 물방울무늬로 변형되어 훗날 그녀의 작품 제작에 가장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고, 그녀의 물방울무늬에 대한 강박은 관람객에게 전이된다. 강박장애(Obsessive-Compulsive Disor
챗GPT를 비서로 채용하자!기존 검색포털을 위협하는 대화형 AI의 출현마이크로소프트社는 챗GPT의 개발사인 Open AI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을 확인한 지 몇 주 만에 인공지능으로 구동되는 Bing 검색 엔진과 Edge 웹 브라우저의 개편을 발표했다. 이번 업데이트를 통해 Bing은 검색 결과 목록을 제공할 뿐 아니라 질문에 답하고 사용자와 채팅하며 사용자 쿼리에 대한 응답으로 콘텐츠를 생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용자 쿼리란 각 개인의 관점에서 데이터를 AI가 분석을 하여 개인화에 더욱더 초점을 맞추고 채팅 방식을 통해 데이
나무들의 표정, ‘그 풍경의 파노라마’ - 심수구 (1949-2018)김종근 미술평론가심수구의 작업은 무엇보다 우리를 숨막히게 한다. 거대한 규모의 패널 위에 꼼꼼히 박혀진 나무들. 그들을 보는 것은 그래서 숨막힐 정도로 질식 할 것 같은 쾌감을 준다. 그런 이유로 그의 작품은 놀랍기도 하다. 한결같이 그는 산등성이에 있는 크고 작은 싸리나무 혹은 갈대, 배나무 등을 길이 3cm로 자른다. 그리고는 그 조각들을 나무 패널 위에 하나하나 붙여 나간다.그 무수한 수백, 수천 개의 나뭇조각들은 점점 하나의 거대한 풍경으로 되살아나,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