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城- 그곳에는 가위손의 이야기도 숨어 있을 것 같았다푸른 에게해의 고성에 해가 기울어 붉은 눈물 떨어지면 무수한 사연들이 돌계단을 딛고 내려온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동화처럼 신비로운 행복감에 젖어 잠드는 아이들은무서운 해적이 용맹을 떨쳐 높은 신분에 올라 견고한 성채를 지켜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고성을 안다날카로운 돌기 잎들이 하늘을 찌를 듯 뻗어 나는 정원수와 햇빛에부서지듯 출렁이는 물결은 가끔 떼 지어 다니는 고양이 무리 잔상을 새겨놓는다성벽의 뚫린 돌 틈으로 검은 돛배가 보이고 포성의 연기와 함께 시간도 사라진다는 것을
-길- 첫눈은 아직 오지않고비만 내린다춤추듯 잎이 떨어지고태양의 주위를 도는 지구별나도 네 주위를 맴돌았다내 눈물로 난 길은 적도(赤道)그 사이 계절은 스물네절기로 나뉘어젊은 날 나이 숫자같이 빛났다과거형 언어보다현재 화법구사를 좋아했던나는 견고한 성(城)이고 싶었을까연인을 쫒아가는저 렌슬렛 기사를 사랑한 여인 샬롯갈대 엮은 배는 그녀와 함께 부서졌지만나는 훼손되지않는 데드마스크어쩔 수 없는 너는멸(滅)하지 않는 내 아득한 풍경우리 서로 포개져 누워성벽을 에워싸는 들풀로아예 길도 없어지고 잊혀졌으면 길, 길들은 어디로 이어져 가는가
-로빈새의 정원- 가시나무 영혼 노래하는 숲붉은 열매 내 치마폭에 떨구어라시인의 새여밤과 낮을 짜는 여신의 베틀가에실타래 물고 나는 새여한여름밤의 꿈처럼인생은 짧고저무는 노을 속으로 날아가 버리면너는 내 어깨 위의 적갈색 상처시인은 외로워라에밀리 디킨슨의 탄식으로 열리는오래된 고대의 정원에서차라리 바람에게 묻는 말너 날아간 곳 몰라라그리운 날갯짓 너를 기다리네 *아테네의 국회의사당 오른쪽에 있는 국립정원은 고대정원을 재정비해 만든 왕궁의 정원이었다 500종류의 식물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데신타그마역에서 가깝다신타그마 광장은 1843
-라팽아질의 노래- 고흐가 밀밭 길로 돌아갈 때청색시대 피카소파리 뒷골목에서 사랑을 찾았네날쌘 토끼 냄비에서 뛰쳐나오는 주점 간판 라팽아질가등이 켜지고에디뜨 피아프가 부르는 장밋빛 인생의 노래모퉁이 길을 백색으로 점유한위트릴로의 독주는 탁자에 넘쳐흐르네다리 위의 시인도 옷 벗는 모델도어릿광대와 함께 밤은 빛나라높지도 낮지도 않은 중간 음역대몽마르트르 언덕에서사랑하고 이별하고문득 라팽아질 출입구에는 모딜리아니 술잔에 눈물의 별 뜨는 날 1860년대 만들어진 파리의 카바레 라팽아질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위트릴로의 작품 속에서 였다.20
-폐허의 노래, 신전의 민들레- 수 천년의 발자국을 담아내던신전(神殿) 아래노란 민들레 꽃홀씨는 날아들어 옛 왕국 자리에서 자란다문화를 꽃피운 고대 페르가몬아크로폴리스 언덕에 펼쳐지는 호수비탈진 노천극장에 정착했던술의 신은푸른 물굽이 따라 돌아오지 않고로마 오현제의 트라야누스 황제는 이교도를 존중해 단테의 천국에서 유유자적(悠遊自適)무너진 기둥 사이 바람의 길을바라보고 있는가거대한 장서(藏書)와 대제단돋을새김 조각들 그를 의지했던 시민과 공화정위용을 떨치던 로마군단을 생각할까민들레 꽃줄기는이른 봄 다시 피어나는데어느 먼 곳에선가 퇴
-마지막 왕자 迷宮에서- 오랜 옛날 문명은에게해 푸른빛으로 열렸을까바다의 신이 한 사람을 왕좌에 앉힐 때무화과나무는 숲을 이루고황소머리 술잔과곡식을 담는 흙항아리 문양 고왔어라천 개가 넘는 침실 크노소스 궁전은깃털 달린 모자마지막 백합왕자 뛰어놀던 곳약속을 깨뜨린 왕과신의 저주로 태어난 미노타우로스(半人半牛),영웅에게 죽임을 당한 미궁이었네 복수는 여기서 끝났어야 했다궁을 만든 匠人조차 아들과 가두어태양 가까이 간 밀랍날개 녹아 추락하고 만이카루스의 날개여가끔 인간의 삶도 迷宮에 갇힌 듯영웅을 구한 저 공주의 실타래를 찾아미로를 헤
-네르파의 귀향- 먼 빙하기에 북극해 이어진 호수에서 왔을까겨울에 떠난 연인 같은 섬 찾아 다시 온다핵 잠수함에 고유의 이름자 붙여주고세계의 낯선 여행자들에게 점프를 보여주는해양 박물관 아기물범도 잊고서,얼어붙는 마지막 호숫가에서 아기들은달빛 따라 돌아가야만 했었다붉은 눈물 노을 출렁이고 마을 어부들의 저녁자작나무 잎들 서로 몸을 부딪칠 때물의 전설로 다시 오는 너,삼면이 물로 둘러싸인 푸른 땅 곶(串)에 당도해회백색 털이 태양에 바래져 가면작은 지능으로 생각해 내는 것오십 년을 살다 간 후에는걸어 다니거나 기어 다니거나 인간들이
-바다의 에로스 - 아가야최초의 혼돈에서 태어나 누구의 아이도 아니었던 너,어느 날 미의 여신 아들이 되어화살통에 황금 화살촉 수북이 담고신전의 지붕을 날아다니네사랑의 전령사 되어,제비가 둥지를 틀고 오래된 나무를 두고떠나지 않는 섬푸른 해안가에서 너를 만나니활시위를 잘못 당겼을까어느 비련의 여인 응징으로한쪽 날개는 꺾여 보이지 않고완벽한 신의 이야기에 사족(蛇足)을 달아본다인간의 사랑이란환희의 연작시 그리고침식되어 가는 배반의 모래알그래도 쉼 없는 파도 같은 사랑 속에너 에로스는 잠들어 있구나 *인류 최초의 황금시대에서 자멸해 버
-사포의 탄식- 여인아그대 美의 여신과 함께 왔는가에게해 동쪽 섬농부들 나무를 심고수세기 간 전쟁의 피폐검은 구름층 사이로도 빛나는 바다에서삶의 환희를 노래한시인이여!사색의 초상은 옛 벽화에 의연히 남았어라멀리 레스보스섬그대의 고향을 생각하며나, 흰 포말 이는 크레타섬 방파제에 서있네어부를 사랑한비련의 시(詩)는 소실되고다른 이의 글 속에추억처럼 배인 끊어진 문장들파도의 노래로 이어지네손끝에 수금(豎琴)의 선율 춤추는 사포여! 그대 한 움큼 물거품으로 떠돌다 가는가 *구노의 첫 번째 오페라로 초연됐던 사포는 고대 그리스 여류 시인이
-센토와 소녀- 현자(賢者)라 불린 그는 인간을 교육시키고 말의 영혼으로 달렸다먼 나라 북방 산기슭강의 지류 만나는 곳에서,신도 인간도 완벽하게 될 수 없었던신의 실패작반인반마(半人半馬) 센토그들 종족의 싸움은 끊이질 않았다누가 그에게 고통의 독화살을 쏘았는가불사를 반납하고하늘의 별지기가 되었네해 돋고 달 스러지는 길목황도(黃道)의 은하수 빛나면한 소녀 리라를 켠다 둘만 아는 비밀의 음감언젠가 만나면 알아볼 거라 되뇔 때별의 눈물 떨어진다 이탈리아 여행길, 강의 범람에 천년을 묻혀있던 정치와 문화 중심지 포로 로마노 유적지를 향해
-물의 신화 바이칼 - 아바이 게세르라고 했던가천마를 타고 온 용사,불의 산이 빙하가 되고툰드라 침엽수 사이 가르는 바람 속에인간의 안온한 삶을 약속한다바이칼 신의 딸이 눈물로연인 예니세이강을 만나고북해로 흐를 때호수는 시베리아의 푸른 눈으로 불렸다샤먼의 나뭇가지 끝에 날리는슬픔의 천조각들속절없는 신들의 전쟁으로 호수는알혼섬 초원의 별빛 영롱하면활화산을 잠재운다수 천년 품어 온 어류를 생각하며또 얼음길 위로 가야 할 길을 내면서 비오는 바이칼 호수 2012 모스크바로 이어지는 시베리아열차는 아름다운 즈나멘스키 수도원을 간직하고 있는
-검은 머리칼- 머리칼그대의 머리칼저 난파선의 잔해에 이는 물거품태양에 스러지는고유의 파도알바트로스 깃털처럼 부서져라포구에 내려앉는 흰 눈밭에사선으로 누운검은 닻줄의 패망쓸쓸한 삶에 천사의 덫에 걸려 신음하는악마처럼 악마처럼내 목에 한 가닥으로 감기어라그대 여러 갈래의 머리칼입맞춤의 순간에 *연인의 머리칼 목에 감기며 전율하던 사랑은 파멸로 갔네담배공장 여공 집시 카르멘은 타로 점을 치고 밀수를 하며 자유분방하지안정된 하사관 돈 호세는 투우사에게 마음을 뺏긴 변심한그녀를 살해하고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네허리케인 태풍에 오렌지를 다 떨
-길 위의 돈키호테- 순한 농부 하인 삼아비루한 말 잔등에 태우고 방랑자는 경계 없이하늘과 바다를 달린다고유의 성(姓)도 잊고불합리적 사고에 창을 휘두르는 기사여허벅지를 보호하는 갑옷 키호테(Quixote)그 이름자 돈 키호테와신의 넓적다리에서 자라 태어난 주(酒) 신 디오니소스그가 빚은 포도주는 슬픔도 사위어다 함이 없어라 그 사랑꿈꾸는 세상닮은꼴 두 사람은 한 남자허구(虛構)에 반해 가는 길요새를 지킨 늙은 독수리가 호위한다 *수년 전 늦가을 어느 날, 스페인 마드리드에서의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 명품거리 그랑비아 길목 에스파냐
-산 마르코 광장- 지중해 섬 건너다섯 개의 눈부신 돔, 대 성당에 이르면종탑 아래 선착장의 배들은 평화롭고비운의 황제와유리공예에 바친 예술가의 시간들일조량은 높았을까그때도비둘기 깃털 뜨겁게 날리는 베네치아최초의 습지대 영토를 넓히고 비잔틴을 사랑한전성과 쇠퇴에 바친 비발디 사계의비밀한 아픔이 있는 곳가면 축제 뒤에 버려진 아이들은곤돌라의 노를 저으며 이방인을 실어 날랐을까광장 한가운데 거리 연주물의 신화화려한 서곡에 걸음을 멈춘다 *바포레토라고 했던가 물의 도시 베네치아로 들어가며 이용한 교통수단인 배인데 나는 곤돌라를 타고 싶었
-세이렌의 절망- 먼 나라지중해 연안밀랍으로 귀를 막은 영웅과노래에 미혹된 어부의 배 좌초시키는반은 인간 반은 조류(鳥類)로 날던세이렌 자매들이여어느 비극의 시인한(恨)으로 포도나무가 자라고음악가가 탄식해 쓴 곡의 음(音)을 날개로 끌어모아바다로 가는 길 끝에서 노래했던가악기의 달인 오르페우스에게 패배한 날울면서 바위가 되어버린세이레네스섬의 기괴(奇怪)한 이야기그대들의 전설에무심한 객선 낙원이었던 곳을 지날 때스크루에 감기는 물보라고운 아마빛 머리칼의 기억 *새의 섬이라 불리는 터키 쿠사다시에서 그리스 사모스섬으로 들어갔던 게 벌써
-늑대의 신화- 동으로 원형경기장서쪽으로 테베라강에 이르는 구릉지에 은빛 늑대붉은 돌 거친 들판 그곳에서젖을 물려 키운 아기들과 뜀박질했지양치기에게 빼앗긴 아이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어느 폭풍우 치는 날 사라진 왕처럼,옛 영웅이 아프리카 해안까지 밀린 전장에서돌아온 귀향의 언덕그곳에 나라를 건국(建國)한늑대아이는세상의 집들을 짓기 시작했네수 천년 바람에도 온전한 청동문 집들을,뜨락에 수 천년 달이 뜨고동굴에서 제 눈빛으로 불 밝히며사그라뜨리던 늑대는이제 죽음의 은화살도 비껴간 채로마의 팔라티노 언덕을 맴돌고 있다네아이를 찾아 *태양
-태양신과 함께- 지혜의 최고봉이라 불린관모와 킬트복장에 수염을 붙이고최초로 파라오가 된 여인하셉수트 여왕그녀는 황금의 나라 원정대가 가져온보물이야기를 이집트 벽화에 새겨 넣는다범람하는 나일강신전의 계단에 배를 묶고장제전으로 향하던 무거운 발길신라의 선덕여왕처럼 평화의 시대를 염원했으리라태초의 검은 물 뒤로 솟아난태양신의 사랑 속에 바쳤던 뜨거운 조국애신의 섭리로 키운 광야의 모세와 백향목깊고 향기로운 숲을 두고 떠난다수 천년 하계(下界)의 범선에서 내린 신은 이윽고 그녀의 감은 눈에 입맞춤잠의 계곡 비문에도 흐릿한 이름자를 부른다
아폴론의 고독 그림에 붙여 여인들의 저주였을까신들의 산 올림푸스에서 추방되기도 했던 태양신 아폴론은빛나는 외모와 지성에도 실연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대 바빌론의 공주를 사랑했지만아폴론을 연모하던 물의 님프 클리티에의 발설로공주는 왕에게 죽음을 당하고 그 사랑의 향기를 잊지 못해향나무로 변하게 해 주었다고 하는데아폴론의 사랑은 빗나간 큐피드의 화살처럼 이룰 수 없었던 것일까사랑하는 여인들은 꽃이 되고 나무가 되고......뮤즈에 둘러싸여 리라를 켜도 행복하지 않았고동쪽에서 서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쫓는 몸에 뿌리가 돋고해바라기 꽃이
-그림 속 길 위에서- 어느 시점에 이르면회상의 선(線)등고선으로 뻗은 길말발굽 흔적은 과거로 유추될 뿐이중 창문너머로 나는 희미한비둘기 떼처럼삶은 알 수없고무작위로 뽑은 먼 전설 어느 기사의 시종존재의 울림으로 나팔 불 때자유인 조르바의 춤용기를 주는 자화상의 노래그 해변의 춤은 아직 유효할까내 안으로 오는캔버스 화면에 내려앉는 모든 것무겁거나 가볍거나 해변이며 사막이며그것은 길언젠가 지나온 사막을 다스린마지막 여왕눈가에 붓질 밀어내며 동공을 연다낙타와 옛 상인들무심한 사구(沙丘) 나도 희망으로 눈을 번쩍 뜨며슬프게 끊어질 듯 이
꿈꾸는 스핑크스시인화가 박정해 그대는 누구인가여신의 사주(使嗾)를 받아도시의 한가운데서 길을 막고 묻는 자네 개의 다리와 두 개의 다리, 그리고 세 개의 다리를가진 것은 무엇이냐고고운 여인의 이마와 날카로운 사자의 발톱으로수수께끼를 던진 먼 옛날을 기억하는가물음에 답하지 못한 무수한 사람들을 해한 일도,모래 폭풍 뜨거운 정념으로연모한 영웅에게 정답을 인간이라고 알려주고석회암 상체와 머리를 사막에 묻고유적이 되어버린 그대오전에 커졌다가 정오에 작아지고 오후에 다시 커지다밤에 사라지는 처음부터 둘은허무한 그림자놀이를 하고 있었던가절규로